박명림 교수, 한국사회 과두화·기업화로 탈공공성 주장
1970년대 ‘크리스천아카데미’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 극복에 나섰던 고 강원룡 목사는 ‘인간화’를 화두로 제시한 바 있다. 그 뒤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인간화가 주목받고 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음에도 우리 사회의 ‘반인간화’ 현상이 더욱 극심해졌다는 진단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21일 대화문화아카데미(전 크리스천아카데미)가 다시 인간화 운동을 벌이자는 취지로 연 ‘오래된 새 길 인간화’ 포럼에서 ‘민주화에서 인간화로’ 발표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편적인 세계의 현주소와 비교했다. 박 교수가 제시한 여러가지 지표들은 여러 분야에서 이미 집계되어 있던 것들이나, 묶어보면 한결같이 우리 사회의 반인간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민주화 뒤 우리 사회는 꾸준히 성장주의의 길을 밟아왔다. 일부로부터 ‘무능하다’는 지탄을 받았던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시기에도 국가는 고성장을 해왔다는 것이 지표로 확인된다.(표1) 그러나 박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결과와 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민주국가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보편적 지평과 글로벌 스탠다드, 세계적 경로와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빈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 한국은 과두화, 기업화 사회 박 교수는 한국 사회를 ‘기업지배사회’(corpocracy)로 규정했다. 기업의 영향력이 사회 전 영역에 과도하게 넘쳐나며, 정부를 비롯한 사회의 다른 영역들도 기업논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사회 분야에서 과두화로 인한 부의 편중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본다.
경제분야에서 10대 기업집단의 자산 및 매출액 규모 추이(표2)를 보면, 공기업을 제외해도 재벌체제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한다. 기업뿐 아니라 은행·유통·출판 등 다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에스에스엠(SSM·기업형 슈퍼) 경쟁이 시작된 2007~2009년 사이 ‘빅3’ 기업의 전체 슈퍼마켓 점유율이 6.2%에서 22.2%로 급증하는 대신 소형 슈퍼마켓은 2만여개 이상 줄어든 것은 단적인 사례다. 박 교수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시장규모 확대, 업자 축소 및 대형화, 고용 감소’ 공식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두화는 경제분야뿐 아니라 다른 사회 분야로까지 확대된다. 2002년부터 전체 요양급여에서 병원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의원급 비율을 앞지르면서 대형병원의 비중이 커지고 동네의원의 폐업률이 높아지고 있다.(표3) 2008년 법률시장 전체 규모는 2조원 가까이 되나, 이 가운데 상위 6대 로펌의 전체 매출액 추정치가 9800억원에 달할 정도로 법률시장의 과두화도 심각하다. 교육에서는 누구나 체감하듯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들이 주로 고위공무원, 판검사, 민간 부문의 경영자 등으로 진출하는 비중이 높다.
이런 과두화·상층화는 일반 국민들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과 비교하면, 일반 국민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전문가들의 1인당 인구는 대체로 낮다.(표4) 전문가 영역에서 벌어지는 과두화가 시민의 서비스 접근 가능성과 질을 축소시키는 역설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공공성’ 잃어 반인간화 진행 박 교수는 이에 따라 한국 사회의 ‘탈공공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봤다. 모든 분야에서 사회성, 평등성, 공공성, 분배성, 복지성이 떨어지는 반인간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국민순소득(NNI)에 견준 1인당 공공사회지출을 보면, 2005년 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은 24.4%에 달하나 한국은 8%에 불과하다.(표5) 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야 할 정부의 공적인 구실이 붕괴됐다는 지표다.
공공성 붕괴는 삶의 피폐화, 불안정화로 이어진다. 소득분배 상황이 대표적이다. 상대적 빈곤선 이하의 소득을 얻은 사람들의 비율을 가리키는 상대적 빈곤율은 2007년 13%까지 늘어났으며, 소득불평등을 가리키는 지표들 역시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표6) 2003~2009년 사이 중산층 가구수가 60.4%에서 55.5%로 줄어들고 중산층 소득증가율이 전체가구 평균(7.4%)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2%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하향빈곤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근대화를 거꾸로 되돌려 세습화·신분화에 목을 매게 된다. 부모의 학력·지위·소득이 자녀의 학력과 높은 상관성이 있다거나 학력별로 비정규직의 비율이 크게 나뉜다는 통계, 자영업자의 높은 창업·폐업률 등은 이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불안정한 삶에 노출되기 싫은 이들은 필사적으로 과두체제에 진입하려 하고 이를 대물림하려 한다. 반면 여기 진입하지 못한 이들은 비정규직, 실직·퇴직, 자영업 창·폐업 등 끝없이 삶의 근거를 잃어간다는 얘기다. 이런 반인간화의 정점은 자살과 출산거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율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여주고 있다.(표7) 스스로 삶을 끝내거나 생명을 생산하기를 거부하는 현상은 삶의 파괴를 극단적으로 나타낸다. 박 교수는 “출산율은 민주화 및 경제발전에 정확하게 반비례, 자살율은 민주화에 비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대안은 공공성 회복할 정치의 혁신 그렇다면 인간화의 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박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국가의 구실 회복을 통한 ‘공공성 회복’과 권력구조 재편 등을 통한 ‘정치의 역할 증대’으로 모아진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회권력자원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된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과두화 등 상층집중을 해소할 국가의 형평·분배 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박 교수는 신자유주의 담론과 함께 등장한 ‘법의 지배’를 경계한다. 시장의 지배적 행위자들에겐 무한 자유를 허용하며, 시장열패자들에겐 엄격한 법 적용을 들이대는 등 시장만능주의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사회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정치의 역할 증대가 필요하다. 국가 권력의 강화가 아니라 시민과 대표의 역할 증대가 뼈대다. 의회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민주주의 지표가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박 교수는 다양한 사회문제가 의회로 수렴돼 정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회규모(의원수와 권한)의 대폭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표8) 지역구 선출 대표와 정당명부제를 통한 비례대표를 양원으로 구성해, 각각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교육선거와 함께 선출하는 등의 선거조합도 필요하다고 봤다. 또 권력분점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의 권력도 대폭 줄여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리하자면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혼합민주정’이 정착되어야,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높여 인간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공공성 붕괴는 삶의 피폐화, 불안정화로 이어진다. 소득분배 상황이 대표적이다. 상대적 빈곤선 이하의 소득을 얻은 사람들의 비율을 가리키는 상대적 빈곤율은 2007년 13%까지 늘어났으며, 소득불평등을 가리키는 지표들 역시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표6) 2003~2009년 사이 중산층 가구수가 60.4%에서 55.5%로 줄어들고 중산층 소득증가율이 전체가구 평균(7.4%)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2%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하향빈곤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근대화를 거꾸로 되돌려 세습화·신분화에 목을 매게 된다. 부모의 학력·지위·소득이 자녀의 학력과 높은 상관성이 있다거나 학력별로 비정규직의 비율이 크게 나뉜다는 통계, 자영업자의 높은 창업·폐업률 등은 이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불안정한 삶에 노출되기 싫은 이들은 필사적으로 과두체제에 진입하려 하고 이를 대물림하려 한다. 반면 여기 진입하지 못한 이들은 비정규직, 실직·퇴직, 자영업 창·폐업 등 끝없이 삶의 근거를 잃어간다는 얘기다. 이런 반인간화의 정점은 자살과 출산거부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율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여주고 있다.(표7) 스스로 삶을 끝내거나 생명을 생산하기를 거부하는 현상은 삶의 파괴를 극단적으로 나타낸다. 박 교수는 “출산율은 민주화 및 경제발전에 정확하게 반비례, 자살율은 민주화에 비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대안은 공공성 회복할 정치의 혁신 그렇다면 인간화의 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박 교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국가의 구실 회복을 통한 ‘공공성 회복’과 권력구조 재편 등을 통한 ‘정치의 역할 증대’으로 모아진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회권력자원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된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과두화 등 상층집중을 해소할 국가의 형평·분배 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박 교수는 신자유주의 담론과 함께 등장한 ‘법의 지배’를 경계한다. 시장의 지배적 행위자들에겐 무한 자유를 허용하며, 시장열패자들에겐 엄격한 법 적용을 들이대는 등 시장만능주의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사회가 시장에 종속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정치의 역할 증대가 필요하다. 국가 권력의 강화가 아니라 시민과 대표의 역할 증대가 뼈대다. 의회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민주주의 지표가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박 교수는 다양한 사회문제가 의회로 수렴돼 정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의회규모(의원수와 권한)의 대폭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표8) 지역구 선출 대표와 정당명부제를 통한 비례대표를 양원으로 구성해, 각각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교육선거와 함께 선출하는 등의 선거조합도 필요하다고 봤다. 또 권력분점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의 권력도 대폭 줄여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리하자면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혼합민주정’이 정착되어야,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높여 인간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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