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닫을라’ 예금 대량인출
경제·금융 뿌리째 흔들릴 수도
경제·금융 뿌리째 흔들릴 수도
대공황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십니까? 빛바랜 흑백 사진과 영상 속 어두운 표정의 미국인들이 끝을 알 수 없이 길게 줄을 선 모습 아닐까요? 조그만 빵조각과 한 국자의 수프를 얻으려는 기다림이었습니다. 또 한편에선 옷을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이 월가의 은행 앞에서 불안하면서도 성난 표정으로 무질서하게 서 있는 모습입니다. 은행이 언제 망할지 몰라 맡긴 돈을 찾으러 나선 고객들입니다. 이런 걸 ‘뱅크런’(Bank Run·예금 대량인출)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우리나라에서도 더는 낯설지 않습니다. 배고픔의 긴 줄은 1997년 외환위기 때 봤고, 성난 표정의 고객들이 은행 앞에 무질서하게 줄 선 모습은 현재 진행형인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고 있습니다.
최근엔 39년 전통의 총자산 1조4164억원에 이르는 프라임저축은행이 뱅크런에 휘청이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이후 사흘 만에 약 1000억원의 대량인출이 있었습니다. 은행 총수신(예금)의 8%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고객들이 왜 갑자기 돈을 빼기 시작했을까요? 은행이 정말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빠르게 번졌기 때문입니다. 프라임이 기업들에 한도액을 초과해 대출해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불쏘시개였습니다. 이미 지난 2월 7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와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 등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면서 저축은행에 대한 불신이 한층 높아진 상태여서 발화력은 더욱 컸습니다.
뱅크런은 자칫 한 나라의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뿌리째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은행뿐 아니라 정부도 나서 뱅크런의 확산을 막으려 합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서 (프라임을) 지원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은행의 ‘최종 대부자’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의 설립, 은행이 예금의 일정 비율을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지급준비금제도, 5000만원 이하 예금의 보호장치 등도 뱅크런을 예방하려는 제도입니다.
은행의 자구책도 있습니다. 프라임은 수천명의 고객들에게 대기번호표를 주고, 하루 250명씩 인출을 허용했습니다. 19세기엔 은행들이 인출액을 동전으로 세주면서 시간끌기를 했습니다.
뉴딜로 친숙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한 지 이틀 만에 ‘은행 휴일’을 선포해 모든 미국 은행의 문을 일시 닫도록 했습니다. 그는 “침대 밑에 돈을 보관하는 것보다 다시 문을 열게 될 은행에 보관한 돈이 더 안전하다는 걸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린다”고 연설했습니다. 뱅크런의 악순환 고리를 끊은 그의 말과 행동은 금융안정에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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