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더블딥’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인 3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국제자금, 안전자산으로 대이동 조짐
신용등급 강등 당해도 국채가격은 유지 전망
달러 대신할 통화 없어…유로화는 깊은 ‘내상’
“미 재정 악화 장기화땐 안전성 흔들릴 수도”
신용등급 강등 당해도 국채가격은 유지 전망
달러 대신할 통화 없어…유로화는 깊은 ‘내상’
“미 재정 악화 장기화땐 안전성 흔들릴 수도”
세계 금융시장에 ‘퍼펙트 스톰’의 도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지난 6월 세계경제에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로 일어나면 거대한 폭풍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은 미국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뒤의 재침체) 공포와 유럽의 부채위기에 중국의 긴축 우려까지 겹쳐 있다.
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스페인의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6%대로 치솟았다. 이는 이들 나라들이 국채를 발행할 때 지급하는 이자율로, 이렇게 높은 수준으로 이자를 지급하면 그리스나 아일랜드처럼 ‘구제금융’에 의존해야 할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중국 역시 오는 9일 발표되는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준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경기위축이 우려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엔-달러 환율이 76엔대까지 떨어지자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불안한 기류 탓에 국제 자금시장은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서 금·달러·미국국채·스위스프랑 같은 ‘안전자산’으로 대이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1660달러대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2.61%로 떨어졌고, 독일 국채인 분트 수익률도 2%대로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국채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다른 자산에서 위험을 느낀 투자자들이 대거 이들 국채 매입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통화시장에서는 스위스프랑이 급등하고 있다. 부채한도 증액 이후 유로화에 비해 소폭 강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달러는 스위스프랑에 대해서는 역대 최저로 하락했다. 그러자 스위스 중앙은행은 3일 “스위스프랑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됐다”며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해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했다.
글로벌 자금의 흐름은 미국달러와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그동안 금융시장은 ‘달러 유동성 공급→달러 약세→위험자산 선호→원자재 및 주식시장 상승’이라는 사이클로 움직였다. 달러로 거래되는 국제 원자재가격은 달러가 하락한 만큼 상승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미국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지 않아 유동성 공급이 줄어들 경우 달러가 강세로 전환돼 자금의 흐름은 뒤바뀔 수 있다. 이런 우려는 현재 세계 증시 동반급락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재활치료’ 중이지만 달러는 몰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대세다. 달러를 대신할 눈에 띄는 통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깊은 ‘내상’을 입었고, 위안화는 아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어 달러가 기축통화 헤게모니를 잃는 과정은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최근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더라도 미국 국채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엄청난 양의 미국 국채를 들고 있는 중국은 이 국채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 독일 국채는 공급량이 부족하고, 중국은 국채 규모가 작은데다 자본규제를 하고 있어 투자가 힘들다. 따라서 유사시에 위험자산에서 미국 국채로 갈아타는 ‘규칙’이 이번에도 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채 가격이 예상을 뒤엎고 급등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수차례 으름장을 놨던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미국 신용등급을 실제로 여러 단계 강등시키는 ‘모험’을 하거나 미국의 재정이 더욱 나빠지는 사태가 올 경우에만 글로벌 자금은 새로운 안전자산 투자처를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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