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디스크(HDD) 가격 폭등이 현실화되면서 국내 피시(PC)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하드디스크 품귀 현상이 처음 빚어진 건 지난달 벌어진 타이 대홍수로 하드디스크를 생산하는 현지 공장들이 침수되면서부터다.
국내에 부품 및 조립 컴퓨터를 판매하는 용산전자상가 등은 사실상 판매에 손을 놓은 상태다. 가게마다 ‘1인당 1개 판매’라는 문구를 써붙였지만, 그마저도 없어서 팔지 못한다. 하드디스크 가격은 지난달 이후 2배 이상 뛰어올랐다. 부품시장조사업체 다나와에 따르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500기가바이트(GB) 제품의 경우 시게이트의 배러큐다 500GB 제품은 7일 현재 11만9000원으로 지난달 평균 판매가인 5만원의 2배를 넘겼고, 웨스턴디지털의 500GB 제품도 6만원에서 12만6000원대로 올랐다. 1테라바이트(TB)급의 경우 웨스턴디지털은 7만원에서 17만원으로, 시게이트 2TB급은 9만2000원에서 18만원대로 뛰어올랐다.
세계 하드디스크 1, 2위 생산업체인 미국 웨스턴 디지털과 시게이트 모두 타이에서 하드디스크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하드디스크 주요 부품 회사들까지 대부분 타이에 현지 생산 기지를 두고 있어, 타이가 아닌 공장에서 하드디스크를 만드는 회사들조차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는 형편이다.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전세계 하드디스크 생산량의 40%가량이 타이에서 나온다. 세계 최대 하드디스크 생산업체인 웨스턴디지털 코리아 쪽에서는 “타이 지역 모든 공장이 가동 중지 상태다. 국제적으로 하드디스크 가격이 20~50% 올랐고, 국내에도 하드디스크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며 “국내 총판 재고도 소진되면 4분기 동안 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공장이 정상화되려면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불똥은 국내 조립 피시 업계로 고스란히 옮겨붙었다. 당장 가격이 두배 이상 뛰어오른데다 부품 자체도 구하기 어렵다 보니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용산전자상가에서는 중고 제품까지 가격이 오르는 추세다.
대기업의 완제품 피시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그나마 부품 재고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어 가격 유지가 가능했지만, 차질이 장기화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는 데스크톱과 노트북 가격을 3~4% 인상하겠다고 지난 3일 밝혔다. 삼성전자의 경우 데스크톱(DM-C600-PAD30)이 89만원에서 92만원으로, 노트북(NT 300V 5A-S66)은 128만원에서 131만원으로 올랐다. 삼성전자는 하드디스크를 직접 생산하지만 모터 등 하드디스크에 들어가는 부품을 타이에서 들여오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하드디스크 가격이 계속 올라 11월 출고되는 완제품 컴퓨터부터 소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세계 4위 피시업체인 에이서 역시 하드디스크 가격 상승에 따라 4분기 생산량을 전분기 대비 5~10% 감축했으며, 11월부터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기로 했다. 피시 외에도 하드디스크가 들어가는 내비게이션, 가정용 게임기, 셋톱 박스, 클라우드 서버 관련 업체 모두 가격 인상 우려를 안게 됐다.
하드디스크 공급 부족 사태가 내년까지 장기화될 우려가 더해지면서,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나와 쪽에서는 “최대 15만원까지 오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일반 가정용 소비자의 경우 조립 컴퓨터 구입을 미루거나, 아예 그동안 고가여서 사용을 꺼려왔던 차세대 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미 시중에 출시된 완제품은 가격 인상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여서 일반 사용자라면 기존 출시 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품귀 현상으로 저장장치의 세대 전환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차세대 저장장치로 각광받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의 경우 기존 하드디스크보다 속도가 3~4배 빨랐지만, 가격이 비싸 일부 고가 제품에만 장착돼 왔다. 업계 관계자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의 판매량은 9월에 비해 늘어나고 있으며, 주로 60~80GB 제품으로 10만원대 초반 제품이 대체군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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