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은행자동화기기(CD·ATM) 제조·판매회사, 수표 출금 가능한 현금자동지급기 세계 첫 개발. 청호컴넷이 쌓아온 화려한 이력의 일부다.
지난 1977년 설립된 청호컴넷은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산공장을 매각하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등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일 경쟁업체인 엘지(LG)엔시스, 노틸러스효성 등 대기업 계열사들을 덤핑 등 불공정 거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해 업계에 파열음을 일으킨 것도 고사직전까지 몰린 이런 경영난과 무관치 않다. 에이티엠 시장과 청호컴넷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청호컴넷 작년 316억 적자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 나서 “덤핑·담합 불공정 거래탓”
대기업 경쟁사 공정위 제소
“시장포화 경쟁력 잃어” 지적 우리나라에 은행자동화기기가 도입된 것은 1975년의 일이다. 외환은행에서 처음으로 이 장비를 도입했다.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였다. 1978년 1월26일치 <경향신문>을 보면 “외환은행의 현금자동 지불기. 예금카드를 넣으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5분안에 예금을 찾을 수 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려있다. 당시에는 현금인출만 가능했으며, 전용카드로 1만원권과 1000원권을 찾을 수 있었다. 청호컴넷은 1977년 청호실업으로 문을 열었다. 금융권에 지폐계수기 등을 공급하다가 1980년대 초 현금자동지급기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요 부품은 일본에서 사들여왔다. 청호컴넷이 에이티엠 시장에 선도적으로 진출하고, 에이티엠에 대한 은행 수요가 늘 것으로 보이자 효성그룹과 엘지(LG)그룹도 별도 사업부를 두고 각각 1981년, 1987년에 에이티엠 사업에 나섰다. 은행자동화기기는 은행업무의 효율성에 혁신을 가져다줬다. 현금 출금, 통장정리 등 다양한 업무를 창구 직원 없이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고, 공휴일에도 기본적인 은행업무를 제공할 수 있어서였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에이티엠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이유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1992년 국내에 1만대도 설치되지 않았던 자동화기기는 2003년 8만대까지 늘었다. 10년을 지나면서 8배로 증가한 것이다. 에이티엠 시장이 정체 상태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연간 시장 규모도 1만여대 수준으로 추락했다. 노후기기를 교체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뒤 잇따랐던 은행들의 인수·합병으로 영업점 숫자가 줄어 자동화기기 확산 흐름을 상쇄시켰던 요인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최근 2, 3년 동안 에이티엠 수에 큰 변화가 없다”며 “에이티엠 시장이 이미 한계에 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당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2009년 이전 2400만원 안팎이던 에이티엠 가격은 2010년 1520만원에서 지난해 1320만원까지 떨어졌다는 것이 업계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기업 계열이 아닌 청호컴넷은 해마다 적자를 보고 있다. 2009년 24억원의 흑자에서 2010년 19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에도 31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구로 생산공장을 매각하고, 올해 들어 600여명의 직원 가운데 50명을 희망퇴직 형식으로 내보냈다. 반면 노틸러스효성과 엘지엔시스는 2010년 각각 283억원과 15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청호컴넷 관계자는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1대당 1700만~1800만원에 이르는 기계를 재벌계 대기업들이 비정상적인 가격인 1100만~1300만원으로 시장가격을 떨어뜨려 중소기업과 협력업체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호컴넷이 이들 두 업체를 불공정거래와 입찰담합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한 이유다. 대기업 쪽의 설명은 다르다. 에이티엠 시장 자체가 담합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엘지엔시스 관계자는 “은행이 수요를 독점하는 에이티엠 시장에서 공급자보다 은행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최저가 입찰이기 때문에 담합을 할 수 없다”며 “청호컴넷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청호컴넷의 몰락이 원가경쟁력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노틸러스효성 관계자는 “국산화에 성공한 우리와 달리 청호컴넷은 현금입출금 모듈 등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쓴다”며 “최근 엔고가 심해지면서 청호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는 공정위의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에이티엠 업계 내부의 마찰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욱 김경락 기자 dash@hani.co.kr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 나서 “덤핑·담합 불공정 거래탓”
대기업 경쟁사 공정위 제소
“시장포화 경쟁력 잃어” 지적 우리나라에 은행자동화기기가 도입된 것은 1975년의 일이다. 외환은행에서 처음으로 이 장비를 도입했다.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였다. 1978년 1월26일치 <경향신문>을 보면 “외환은행의 현금자동 지불기. 예금카드를 넣으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5분안에 예금을 찾을 수 있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려있다. 당시에는 현금인출만 가능했으며, 전용카드로 1만원권과 1000원권을 찾을 수 있었다. 청호컴넷은 1977년 청호실업으로 문을 열었다. 금융권에 지폐계수기 등을 공급하다가 1980년대 초 현금자동지급기 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요 부품은 일본에서 사들여왔다. 청호컴넷이 에이티엠 시장에 선도적으로 진출하고, 에이티엠에 대한 은행 수요가 늘 것으로 보이자 효성그룹과 엘지(LG)그룹도 별도 사업부를 두고 각각 1981년, 1987년에 에이티엠 사업에 나섰다. 은행자동화기기는 은행업무의 효율성에 혁신을 가져다줬다. 현금 출금, 통장정리 등 다양한 업무를 창구 직원 없이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고, 공휴일에도 기본적인 은행업무를 제공할 수 있어서였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에이티엠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이유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1992년 국내에 1만대도 설치되지 않았던 자동화기기는 2003년 8만대까지 늘었다. 10년을 지나면서 8배로 증가한 것이다. 에이티엠 시장이 정체 상태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연간 시장 규모도 1만여대 수준으로 추락했다. 노후기기를 교체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뒤 잇따랐던 은행들의 인수·합병으로 영업점 숫자가 줄어 자동화기기 확산 흐름을 상쇄시켰던 요인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최근 2, 3년 동안 에이티엠 수에 큰 변화가 없다”며 “에이티엠 시장이 이미 한계에 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당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2009년 이전 2400만원 안팎이던 에이티엠 가격은 2010년 1520만원에서 지난해 1320만원까지 떨어졌다는 것이 업계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기업 계열이 아닌 청호컴넷은 해마다 적자를 보고 있다. 2009년 24억원의 흑자에서 2010년 19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에도 31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구로 생산공장을 매각하고, 올해 들어 600여명의 직원 가운데 50명을 희망퇴직 형식으로 내보냈다. 반면 노틸러스효성과 엘지엔시스는 2010년 각각 283억원과 15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청호컴넷 관계자는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1대당 1700만~1800만원에 이르는 기계를 재벌계 대기업들이 비정상적인 가격인 1100만~1300만원으로 시장가격을 떨어뜨려 중소기업과 협력업체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호컴넷이 이들 두 업체를 불공정거래와 입찰담합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한 이유다. 대기업 쪽의 설명은 다르다. 에이티엠 시장 자체가 담합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엘지엔시스 관계자는 “은행이 수요를 독점하는 에이티엠 시장에서 공급자보다 은행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최저가 입찰이기 때문에 담합을 할 수 없다”며 “청호컴넷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청호컴넷의 몰락이 원가경쟁력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노틸러스효성 관계자는 “국산화에 성공한 우리와 달리 청호컴넷은 현금입출금 모듈 등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쓴다”며 “최근 엔고가 심해지면서 청호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는 공정위의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에이티엠 업계 내부의 마찰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욱 김경락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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