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서는 퇴근도 안 하나요?
Q. TV 드라마를 보면 비서들은 항상 사장이나 회장의 뒤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밤이나 주말에도 전화 한 통이면 달려나가고요. 비서들은 퇴근도 안 하나요? 주5일제를 적용받기는 하나요?(gru11)
A. 드라마 속 비서는 참 버라이어티하죠. SBS <청담동 앨리스>엔 꼭 친구 같은 ‘문 비서’가 등장합니다. 그는 감정 기복 심한 차승조 회장(박시후)이 벌인 사고를 수습하고 그의 사랑도 이어주며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죠. 그렇게 완벽한 외모의 미혼 회장님과 그에 못지않게 부티 나는 비서가 어딨냐고 버럭 하면서도 자꾸만 드라마에 빨려드는 전, 왜 이런 걸까요? KBS <내 딸 서영이>엔 회장의 여자가 된 ‘윤 비서’가 나옵니다. 그는 회장의 아이를 낳아 몰래 그 집으로 입양시키고도 20년 넘게 충실한 비서 행세를 하죠. 그렇게 눈치가 없어 어떻게 굴지의 기업 회장 자리에 올랐느냐고 욕하면서도 계속 보고 있는 전, 정말 왜 이런 걸까요?(누가 저 대신 이 질문 좀 보내주시길) 어쨌거나 드라마 속 비서들은 한결같이 ‘저녁이 있는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림자처럼 보스의 곁을 지킵니다. 현실의 비서들도 똑같을까요?
일단 궁금증을 파헤치기 전에 기초부터 다져보겠습니다. 웬만한 대기업의 각 계열사엔 비서실이나 비서팀이 별도로 꾸려져 있답니다. 보통은 10명이 넘죠. 이들 중 절반 가까이는 ‘스태프 비서’랍니다. 회장·사장 등 보스가 외부로 나설 때 수행을 하곤 합니다. 경호팀인 셈이죠. 나머지는 여러 팀으로 나뉘어 각 보스를 보좌합니다. 회사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개 여자인 내근비서와 남자인 수행비서가 한 팀을 이룹니다. 독자님이 궁금해하는 ‘그림자 비서’는 의전을 담당하는 수행비서를 말합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수행비서들도 퇴근을 한답니다. 다만 ‘형식적’ 퇴근입니다. 주5일제 권리는 꿈도 못 꾸고요. 한 대기업의 3년차 수행비서인 ㄱ씨는 “사생활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보스의 출퇴근길을 함께합니다. 보스의 퇴근 뒤 술 약속, 주말 골프 약속, 해외 출장 등도 예외는 없습니다. 보스가 집에 머무를 때가 비서에게 허락된 유일한 개인 시간입니다. 한 대기업에선 아예 수행비서 2~3명이 교대로 회장님을 24시간 동안 물샐틈없이 보필한다네요. 회장·사장 참 할 만하죠?
사무실에 있는 여자 비서들도 ‘5분 대기조’이긴 마찬가집니다. 보스가 사무실에 있을 땐 절대 자리를 비워선 안 됩니다. 대기업 회장단 비서로 10년간 근무한 ㄴ씨는 “대부분 여자 비서들은 방광염에 걸린 경험이 있다. 생리 현상을 참는 게 가장 힘들다. 보스의 오더에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해서 구두 몇 켤레는 금방 허무하게 망가지곤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보스를 지척에서 보좌하는 비서로 발탁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사자에겐 명예로운 일입니다. 조직에서 인정받은 셈이니까요. 한 대기업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비서실에 자리가 생기면 전체 계열사 직원 중에서 센스 있게 일을 잘 처리하는 직원을 뽑는다.” 그러나 일이 고되 그리 선호되는 자리는 아닙니다. 연봉이 더 많은 것도 아니고요. 가끔 보스가 챙겨주는 용돈이 그나마 보너스가 된답니다.
현실의 비서들은 드라마 속의 친구 같은 비서, 애인 같은 비서에 펄쩍 뜁니다. 현실에선 그저 엄격한 상하관계일 뿐이라네요. 이제 드라마 속 비서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나요? 전 앞으로 드라마를 보면서도 남자 비서들의 간이, 여자 비서들의 방광이 자꾸만 걱정될 것 같네요. 힘내세요, 비서님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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