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불균형성장 극복, 시민들이 경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등록 2013-05-15 19:53

박원순 시장은 ‘사회적경제’라는 물을 만난 듯, 창의와 협동의 서울시 비전을 쏟아냈다. 우석훈 대표는 “경제가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사회적경제가 부흥할 수 있는 적기”라고 강조했다.  김봉규 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박원순 시장은 ‘사회적경제’라는 물을 만난 듯, 창의와 협동의 서울시 비전을 쏟아냈다. 우석훈 대표는 “경제가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사회적경제가 부흥할 수 있는 적기”라고 강조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창간기획] 협동과 공유의 시대(하)
대담| 박원순 서울시장 - 우석훈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이 협동과 공유라는 물을 만났다. 협동조합과 공유경제의 도시를 선언하는가 하면, 창조와 개방의 행정문화를 열어가고 있다. 박 시장의 협동과 공유는 ‘사회적 경제’라는 키워드로 모아진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등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사회적경제가 아직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것은, 근대화 이후 대한민국 경제가 국가주도경제와 시장만능경제의 양극단을 오갔기 때문이다.

3일 박원순 시장을 집무실에서 만나 ‘서울의 협동과 공유, 그리고 사회적 경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적 경제 전문가인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이 진행하고,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가 지혜를 나눴다. 협동, 공유, 사회적 경제라는 주제는 역시 박 시장의 ‘홈그라운드’였다. 1시간 이상 진행된 대담이 생방송처럼 물흐르듯 진행됐다. 잠시의 머뭇거림이나 막힘이 없이 박 시장의 구체적인 소신이 이어졌다.

박 시장이 제시한 큰 그림의 메시지는 뚜렷했다.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승자독식이 아니라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정부 의존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책임을 근간으로 하는 99%의 세상이었다. 시민사회에서 체득한 박 시장의 경험이 시운을 탄 것은 분명해 보인다. 1%만의 세상을 극복하자는 시대의 요구라는 때를 만났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서울시의 내일이 흥미진진해진다. 박시장의 그림이 지속가능한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김현대 선임기자

박원순

흔히 경쟁 통해 혁신한다지만
피로감 또한 굉장하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는
장사도 되고 가치도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우석훈

과거에는 기업만 잘 키우면
경제 좋아진다고 믿어
빈부격차 등 부작용 드러났다
이젠 시민이 주체되는 경제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해야

이원재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전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경제성장도 이뤘고 형식적 민주주의도 만들어 냈다. 하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우석훈 경제가 너무 빨리 오다 보니 소외현상이 생겼다. 그 사람을 어떻게 다독일 것인지에 대한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한 상황이다. 실패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다 데리고 가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게 시대의 고민이다.

박원순 한국 경제 성장은 기본적으로 불균형 성장이었다. 인간의 삶의 질이나 노동의 기본권이 균형있게 지켜지면서 성장한 게 아니었다. 재벌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함께 균형있게 성장한 게 아니었다. 성장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가치들이 무시되거나 왜곡된 성장이었다. 그 부작용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다. 빈부격차, 재벌기업과 중소기업 관계 등이 모두 그렇다. 진정한 경제성장이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도 이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런 상처를 치유하면서 구조를 바꿀 수 없는지 방법을 고민해 볼 때다.

구조를 바꾼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성장모델이 필요하게 된 것인지?

과거에는 주식회사를 잘 키워 다국적기업으로 만들면 경제가 좋아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폐해가 드러나면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다국적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것을 뺏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두고 대안적 경제, 대기업과 별도로 시민이 주체가 되는 경제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양쪽이 보완적으로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경제의 한 축으로 협동조합이 나온 것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진짜 해야 할 것을 찾은 것이다. 기존 체제를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빈부격차의 심화라든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 같은, 불균형성장이 낳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시민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문제 등 불균형성장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사회적 경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류 경제 자체의 변화도 필요하다. 다른 선진국이 겪은 길처럼, 지식을 고도화해 지식산업을 키우고 그리고 문화예술에 기반한 창조 산업을 육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또한 국가 자원이 지나치게 재벌 쪽으로 갔던 것을 균형잡는 일도 필요하다. 서울시의 경우 공공구매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공사 용역을 과거에 턴키방식으로 일괄 발주하던 것을 전면적으로 바꿨다. 과거 방식이 대기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대신 중소기업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구매 방식을 채택했다. 또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매 방식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지(G)밸리를 보면, 1만여개의 기업이 집적되어 있는데 거의 중소기업이다. 이런 기업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정책 패키지를 내놓고 있다. 이런 것들이 균형있는 경제구조 구축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구체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경제라고 통칭하지만,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공유경제 등 여러 종류 정책이 나오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과거에는 국가가 발전을 주도했다. 또 기업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국가만도 아니고 기업만도 아닌 시민기반의 또다른 균형자가 필요하다. 그것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협동조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연대의 경제라고 하기도 하고 공유라고 하기도 한다. 특징은 국가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기업의 힘도 아닌,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그 중간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영리나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사회적 기업이다. 이 중 마을에 기반한 회사를 마을기업이라고 하고, 가난한 사람들, 배려계층들을 주체로 내세우거나 또는 그분들을 돕기 위한 기업을 사회적 배려 기업이나 사회적 연대 기업이라고도 한다. 영리만을 내세우는 전통적 경제 개념과 다른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서 대기업도 수출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이런 상황에서 대안적 경제조직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이탈리아의 사례를 보면, 1929년 대공황 이후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협동조합을 정부 차원에서 많이 독려했다. 그 뒤 이탈리아가 협동조합 나라처럼 된 것이다. 호황 때가 아니라, 위기 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일하게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가 커진 셈이다. 고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이 적기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진국 시절에 가졌던 저임금 등의 장점이 이제 사라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이 무섭게 따라오고 있고, 제조업 중심의 경제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기존 대기업조차도 새로운 전환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한국 경제 전체가 경제고도화, 선진화로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적 경제는 대기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효한 기업이 끌고 가는 경제이다. 물론 이것이 고도화되고 점점 더 발전하면 상당한 정도로 기존 경제를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효과가 생겨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 경제가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지?

빈부격차, 정보격차, 교육문제, 보육문제, 의료 문제 등 우리 삶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문제와 맞닿은 영역이다. 대기업은 이런 영역보다는 제조업 쪽에 많다. 우리 생활을 둘러싼 영역에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가 채워나갈 부분이 많다.

1차, 3차 산업 쪽에 기회가 많다. 3차 산업은 돌봄, 영화, 음악 분야 같은 영역이고, 1차 산업의 농업이나 식품도 협동조합 하기에 굉장히 좋다.

사회적 경제는 지역이나 특정한 커뮤니티에 기반해서 문제를 풀어간다. 대체로 맞춤형 소규모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생활협동조합처럼 큰 유통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일본에서는 지역생협 모델이 발전했다. 지역별 특성이 강하다. 그런데 한국은 생협도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발전한다. 서울에 중앙을 두고 지역에 지부를 두는 식이다.

그건 아마 지역 역량의 격차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성장시킬 수 있는 각 지역의 역량 차이가 크다. 아무래도 서울에 자원이 많이 모여 있다.

사회적 경제는 기본적으로 사회가 튼튼해야 잘될 수 있는 개념이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이니 더욱 그렇다. 한국에는 시민사회가 사회적 경제의 기반이 될 정도로 충분히 발전해 있다고 보나?

환경운동연합의 경우 비교적 초창기부터 에코생협을 시작했다. 훗날 환경운동연합이 위기가 왔는데, 에코생협 덕분에 환경운동연합이 버틴 측면이 있다. 생협은 일반 시민들이 시민운동을 만날 기회를 열어준다. 생협이 시민단체에 지역 주민과 관계 맺는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시민경제라는 것이 결합된 형태다.

시민사회가 서양의 여러 나라에 비하면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성장과 확산은 돼왔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에는 비영리 단체 지원조례가 곧 만들어질 예정이다. 사실 비영리 단체나 지역의 풀뿌리단체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행정의 최고 목표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의 여러 사업이 지역에 침투해서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시민들의 자주적 역량이 지역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려면, 지역 조직이 많아져야 한다. 지역활동 단체들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활동가들의 역량을 만들어주고, 제도적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일을 서울시가 해볼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적 경제가 핵심이다. 다른 지역처럼 공단을 유치하고 도로를 만드는 식은 어렵다.

“재활용만 갖고도 아름다운가게…그런 새로운 시도 하라”

박원순

기존과 다른 시도 하면서
창조산업을 키우는 게 중요
시민들이 역량 펼치도록
서울시가 공간을 만들고
제도적 인프라 만들어줄 것

우석훈

청년창업도 주식회사 아닌
협동조합 형태로 할 수 있다
급여수준 등 뒷받침돼
평생 일자리란 생각 들면
혁명같은 분위기 생길 거다

사회적 경제는 분명히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 예를 들면 서울시가 전체 예산의 30%를 복지에 쓰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중간 지원 조직을 통해 사회적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하려고 한다. 그게 다 사회적 경제 영역에 포함된다. 다른 한편으로 서울이 고민하는 영역이 있다. 과거의 산업이 쇠퇴한 상태다. 예를 들면 성수동 수제화가 쇠퇴했는데 이를 디자인의 힘을 이용해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동대문의 약령시, 종로 2, 3가의 주얼리 산업, 이런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려고 한다. 문화예술 등을 통한 창조산업을 키우는 노력도 중요하다. 사실 솜씨 좋은 주부들이 많은데, 제대로 훈련받고 제대로 판매할 기회가 없었다. 공예 스트리트나 공예박물관을 만들어서 살려볼 생각이다. 전통시장을 살리는 방법도 달리하려고 한다. 기존에 아케이드와 주차장을 만드는 현대화 계획뿐 아니라 취급 품목을 바꿔주거나 일정한 스토리텔링을 돕는 일을 하려고 한다. 골목상권의 특성이 없어지고 대기업의 지점처럼 되어 버렸다. 목수가 목공가게를 열고 특색있는 제품을 만든다든지, 재활용품을 활용해서 창의적 공예품을 만들어 판다든지 하는 일을 북돋워야 한다. 외국을 가보면 작은 도시에 가도 그런 상품이 많고 경쟁력이 있다.

프랑스 파리의 럭셔리 산업도 작은 상인들이 현대화 과정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성도 사실은 지역에 있던 상인들이 현대화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을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패션 부분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내년 3월 문을 연다. 거기에 패션 디자인 가게들을 넣어 서울을 아시아 창조산업의 전진기지로 만들 생각이다. 광장시장의 원단과 한복, 창신동이나 장위동으로 이어지는 봉제가게와 공장들, 그리고 동대문의 도매시장이 엄청난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결합시킬 수 있을지 고민중이다. 우리가 서울패션위크라는 것을 하는데 앞으로 좀더 키우고,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디자이너들을 초청할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기존에 사라지거나 위축됐던 패션 부자재 시장도 함께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것이 창조산업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가보니 협동조합 매장이 백화점을 대체하더라. 생산자 연합, 유통자 연합도 많다. 어떻게 보면 도시의 경제 생태를 시민적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재활용품만 갖고도 아름다운가게 같은 사업이 생겨난다. 스위스의 프라이타크 브랜드는 매출이 굉장하다. 거의 대기업 수준으로 성장했다. 재활용청바지에 허리끈이 그대로 달려 있는 가방 제품처럼 재미있는 물건도 많다. 거의 100만원에 육박하는 고급 제품이다. 서울시 재사용플라자라는 것을 만들었다. 동대문구 용각동에 폐품이나 부자재 뱅크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사갈 수 있게 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 한국 사람의 문화예술감각이나 손재주와 결합하면 상당히 발전할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통상산업진흥원을 통해서 이런 제품을 유통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서울시가 가진 여러 자원을 활용해서 이런 노력을 지속하면 몇 년 안에 굉장한 변화가 있을 거라 믿는다.

서울시가 가진 자원은 충분한지? 중앙정부가 풀어줘야 하는 문제가 많이 있는지 궁금하다.

협동조합기본법 등으로 법제도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박근혜 정부도 협동조합의 중요성은 강조하고 있다. 청년 창업도 주식회사만이 아니라 몇 명이 모여 협동조합 형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나서면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서울시의 모델은 돈과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고 지방에서는 어렵다고들 말한다. 중앙정부가 체계적으로 지원하면 서울에서 가능했던 일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훨씬 빠르게 되지 않을까.

서울도 사실은 지역 중 하나다. 서울이 돈 많다고 해서 역차별을 너무 많이 받아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다. 물론 사람도 있고 경험도 지방보다는 많다. 하지만 지역에도 특유한 자원과 자산이 있다. 그걸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임정엽 완주군수는 ‘농촌의 수도는 완주’라는 비전을 만들고 커뮤니티비즈니스에 집중 투자했다. 지금 완주는 커뮤니티비즈니스의 성지가 됐다. 중앙정부에서 더 잘해줬으면 싶은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사회적 경제의 금융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사회투자기금을 만든다. 하지만 서울시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 계획은 민간과 시가 매칭해서 1천억 규모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나서면 몇 조원 규모를 만들어 각 지역에서 쓸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출연하지 않겠다면 민간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독일의 게엘에스(GLS)은행이니 유럽의 트리오도스뱅크처럼, 선진국에는 사회적 금융기관들이 많이 있다. 수신은 일반 은행처럼 똑같이 하면서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사업에 여신을 제공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간에서도 이런 것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하는 큰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앙정부의 일이다. 아쉬운 측면이 있다.

사회 분위기는 확실히 바뀌었다. 내가 2008년 사회적 경제를 유일한 대안이라고 <괴물의 탄생>에서 얘기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말은 맞지만 한국에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5년 지나면서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우리나라 경제가 가진 특징이 역동성인데, 사회적 경제에서도 역동성이 살아 있다. 굉장히 빠르게 바뀌더라.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는 혁신경제를 앞세우기도 했다. 이들과 사회적 경제는 어떻게 연결이 되나?

혁신은 사회적 경제의 기본이다. 혁신 없이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기존 개념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려다 보니 나온 개념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가게도 기존과는 다른 시도를 하면서 장사가 되게 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가치도 구현하게 만든 것이다.

아름다운가게를 설계할 때 백화점 동선까지 연구해서 적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냄새, 소리까지 연구했다.

언론계의 에이피(AP) 통신, 축구의 에프시(FC)바르셀로나를 대표적인 협동조합으로 꼽는다. 이들은 다 혁신적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경쟁만으로 창조가 나오지 않는다. 협동하다 보니 융합하면서 기발한 창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흔히 경쟁을 통해 혁신이 일어나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은 굉장한 피로와 피폐화를 가져온다. 협동조합은 구성원이 주인인 조직이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 변화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오히려 창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협동은 비효율, 경쟁은 효율이라는 고정관념은 잘못됐다. 협동에 기반한 혁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은 가난하고 열악한 곳이라는 인식이 높지 않은지. 이런 인식이 앞으로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브랜드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자존감을 갖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사명을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경제학자로서, 사회적 경제 분야의 급여수준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중간 정도로 맞췄으면 좋겠다. 대졸자 초임으로 연 3천만원 정도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게 가능하도록 정책적 노력도 해야 한다. 그 정도면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기업은 급여는 높지만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하지 않나. 대학생들이 이게 꿈과 희망만이 아니라 인생의 일자리라고 생각할 때 혁명같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얼마 전에 다녀온 영국의 스콜월드포럼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 브라질의 대선에서 20%를 득표했던 마리나 시우바라는 사람이 발표했는데, 유엔이 채택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개념을 이념으로 발전시켜 정당을 만들었더라. 그걸 들으면서 사회적 경제나 협동과 창조 같은 가치도 좀더 발전시키면 현실적인 사회상을 그리는 큰 그림에서의 이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시는지?

잘 생각해보면 협동조합이 자본주의보다 역사가 깊다. 종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서로 도와서 공동체 안에서 배고픈 사람, 힘든 사람 없게 한다는 생각은 매우 오래되고 깊은 것이다. 물론 이게 정치가 될 정도의 폭발적인 매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원재 경제평론가.
이원재 경제평론가.
성장 일변도로 가다가 좌초된 지금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같은 것이 시대의 큰 흐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에서 먼저 화두로 끄집어냈다기보다는 시민사회에서 먼저 시작한 이야기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정책이나 행정으로 많이 반영되고 있다. 사회적 경제라는 이름으로 하든, 새로운 대안적 경제의 흐름이라고 하든, 정치에서도 브랜드화해서 시민들에게 일종의 상품으로 제공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좀더 가속화하고 심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불균형 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 협동과 창조가 만나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정리된 것 같다.

진행 이원재(경제평론가, 전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박원순 시장 영향력 차단”‘ 국정원 추정 문건’ 나왔다
주진우 구속영장 기각…법원 “언론자유 한계 다투는 사건”
대기업 인사팀, 취업특강서 여대생 외모지적 등 ‘갑질’
치매 아내 4년 돌보던 80대 끝내…“이 길이 가장 행복” 마지막 동행
미 경찰 “윤창중, ‘중범죄’로 다루지 않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