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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등록 2013-09-10 20:32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봉현의 소통과 불통
사는 데는 운도 중요하다. 특히 월급쟁이들은 줄을 잘 서야 한다.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삼성전자에 합격하고도 “제조업이라 싫다”며 지금은 사라진 리스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들이 있다. 임금, 복지와 안정성이 월등해 부러움을 사는 직장들이다. 한 예로 금융위원회 산하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코스콤 등 9개 공기업 직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8700만원이었다. 한국거래소의 평균 연봉은 1억1400만원에 이른다.

월급쟁이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신의 직장’ 사람들이 차츰 기득권의 성채를 높이 쌓고 고성능 양수기를 돌리는 바람에 성밖 사람들이 마실 우물마저 말라버리는 것이 문제다. 금융 공기업이나 은행의 생산성이 매년 크게 달라질 리 없으므로 이들이 더 가져가는 임금은 결국 금융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현대차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의 높은 임금은 3차, 4차 하청업체 직원들이나 경기침체시 먼저 자르기 위해 운영하는 비정규직의 고단한 삶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조합은 운 좋게 성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옹위하는 ‘수비대’로 변해갔다. 공기업 노조는 관료들이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면 반대하는 척하다 임금이나 복지를 더 받아내는 ‘거래’를 아예 제도화했다. 정규 생산직 사원의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한다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다는 소식에, 협력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차가 나중에 자신들을 더 쥐어짜는 게 아닐까를 걱정해야 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하층민으로 굴러떨어지는 나라에서 현직에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챙겨야 하는 사정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노동운동 역시 회사의 차이를 넘어 연대임금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산별교섭을 30여년 전부터 극구 막아온 것은 재계와 정부였다. 이제는 산별교섭을 하려 해도 불가능할 만큼 차이가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SR)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조가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사회적 요구를 폭넓게 고민하고, 이해관계자를 위해 적극 연대하자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가 ‘보호자 없는 병원 운동’을 펼치는 것처럼 그 분야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나서면 효과적인 대안이 만들어진다. 회사가 사회책임경영(CSR)을 잘하도록 감시하는 것도 노조가 적임이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최근 국내 유에스아르의 선진 사례를 인권, 노동관행, 환경, 소비자 이슈 등 7가지 기준에 맞춰 정리한 사례집을 펴냈다.

유에스아르를 두고 ‘노사협조주의’라거나 ‘생색내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노동운동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방에 모든 것을 뒤집는 것이 가당치 않다면, 한걸음씩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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