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있는 한 음식점 카드 결제 단말기 앞에 ‘현대카드는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는 가맹점주의 동의를 얻어 현대카드 결제 거부 스티커 부착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 제공
카드업계 ‘밴 수수료 인하’ 압박 중
현대카드, 소액결제 전표수거 중단
결제대행사, 수거비용 못받아 반발
가맹점에 ‘결제거부’ 스티커 배포
‘수수료 개편안’ 지지부진 갈등키워
현대카드, 소액결제 전표수거 중단
결제대행사, 수거비용 못받아 반발
가맹점에 ‘결제거부’ 스티커 배포
‘수수료 개편안’ 지지부진 갈등키워
카드 업계의 이목이 현대카드에 쏠리고 있다. 업계의 하반기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결제대행 서비스인 밴(VAN·Value Added Network) 수수료 체계 개편을 앞두고, 신용카드사와 밴사간 힘겨루기 대리전을 펼치고 있는 까닭이다. 현대카드는 이달 들어 ‘현대카드 결제 거부 운동’에 직면했다. 국내 밴 1위사인 한국정보통신(KICC)이 가맹점주들의 동의를 얻어 결제전산망에서 현대카드를 제외하겠다고 나섰다. 현대카드 결제 거부 스티커도 전국에 6만장 배포됐다.
발단은 지난 8월, 현대카드가 한국정보통신을 상대로, 분식점 등 주로 5만원 미만의 소액결제가 이뤄지는 8116개 가맹점에 대한 결제 전표 수거 비용은 밴사에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데서 비롯됐다.
밴사는 여러 카드사들을 대행해 각 가맹점과 카드사 간의 결제망을 중개하고 관리하면서 카드사에게서 수수료를 받는다. 가맹점은 여러 카드를 동시에 취급하는데, 카드사들마다 전산망이 다르고 승인 양식도 다르다. 그렇다고 한 가맹점에 여러 카드사가 단말기를 갖추고 관리자를 배치하는 것도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밴사들은 매달 각 가맹점에서 종이 전표를 수거해, 카드사별로 분류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현대카드는 이 전표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대카드 쪽에서는 “손님이 사인한 종이 전표는, 나중에 서명이 위조되는 등 문제가 생겼다면 증빙자료가 되기 때문에 카드사들이 수거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대상 가맹점은 결제 금액이 적고, 부정사용 위험도 낮아 수거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며 “받지 않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급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가맹점에 부정사용 피해가 생긴다면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설명했다. 최근 소액결제 무서명이나, 전자서명 단말기가 늘어나면서, 사인한 전표를 수거할 일도 점점 줄어든 배경 탓도 있다.
안명훈 한국정보통신 차장은 “어차피 여러 카드사를 대행해 단말기 관리 차원에서 가맹점을 찾아가야 하는데, 가서 현대카드 전표만 수거하지 않는다고 해도 밴사는 같은 비용이 발생한다. 전표수거만 분리해 서비스 비용을 낮추는 게 불가능하다”며 “현대카드의 요구는 사실상 수수료를 인하하기 위한 압박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정보통신은 매달 8000만원 가량의 전표수거수수료 수입이 사라지는 셈이다. 종이전표수거수수료는 전체 수익의 30%선이다. 엄기형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장은 “올 초부터 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해 온 카드업계가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한 업체를 찍고 전표 수거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 밴사와 현대카드의 싸움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대리전이어서 장기화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수익성이 악화된데다, 가맹점 수수료율 조정 등으로 긴축경영 압박에 시달리는 카드업계는 결제 건당 80~140원의 밴 수수료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카드사는 연간 7000억원 상당을 국내 13개 밴 업체에게 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비씨(BC)카드가, 4월에는 케이비(KB)국민카드가 인하를 두고 밴사와 실랑이를 벌였다. 카드사들은 밴 수수료를 인하하면 그 여력으로 중소가맹점 수수료도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밴협회는 처음 가맹점을 발굴하고 단말기 설치 및 통신망을 구축하는 초기 비용을 들인 뒤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인데, 카드사가 그 이윤을 가져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의 지지부진한 대응도 사태가 확산되는 데 한 몫했다. 지난 2월 비씨카드와 밴사의 갈등 뒤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밴 시장 구조개선 연구용역을 맡겼는데, 이달 말에야 개편안이 나온다. 지난 7월 열린 ‘밴 시장구조 개선의 기본방향’ 공청회에서 1차적으로 발표된 시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현재 카드사가 밴사와 계약을 맺고 수수료를 지불하는 구조인데, 개편안은 가맹점이 직접 밴사를 골라 계약하고 카드사는 수수료를 중개하는 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240만개 가맹점이 일일이 밴사와 수수료 협상을 맺어야 할 판이다. 또 밴사들이 결제승인 건수가 낮거나 관리가 어려운 지역에 있는 가맹점과 계약을 기피하게 돼 오히려 영세 가맹점이 더 비싼 밴 수수료를 무는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개편안이 나온다고 해도 법적 강제력이 없다 보니, 도입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개편안에 큰 기대를 걸기 어려워지자, 결국 카드사들 각기 알아서 수수료 인하 시도를 하고 있다”며 “현대카드의 상황을 지켜보고, 그 결과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경 기자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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