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의 변화 가능성과 남북 경제협력의 방향을 짚어보는 토론회가 지난 1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코리아컨센서스 제공
북한 경제 ‘변화 움직임’ 학술토론
개성공단은 재가동됐지만 남북간 경제협력은 여전히 교착 국면이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연구센터 코리아컨센서스, 숭실대 남북교류협력연구소와 함께 북한 경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남북경협의 새 방향을 모색하는 학술토론회(‘한반도 산업공동체 구상과 북-중-러 삼각협력관계의 전략적 함의’)를 지난 1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중-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추진되고, 중국이 동남아시아에 공을 들이는 등 아시아 후발국과의 연계도 강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무대를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넓혀 교통, 물류, 교역, 에너지 분야를 하나로 묶어 공동시장, 공동번영을 꾀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성격을 고려할 때 이런 변화가 한국 경제에는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지만 북한의 변화와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1990년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한 북한도 최근의 경제상황은 도전이자 기회일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한성 아주대 교수는 “역내 경제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북한이 여기서 빠지면 동아시아 경제를 따라잡을 가능성은 점점 멀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유엔 등의 경제제재가 길어지면서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이 깊어가고 있다. 2012년 북한의 대중국 교역은 59억3천만달러였다. 이는 북한 교역의 90%에 해당한다. 이종운 극동대 교수는 이대로 가면 “북한 경제는 되돌리기 힘든 수준의 대중 종속구조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남한에서 볼 때도 이런 상황은 “중장기적으로 남북경협 사업의 추진과 북한 산업의 구조조정 지원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업 자율권 강화 ‘7·1조처’ 11돌
‘6·28방침’으로 우수공장 재량권↑
외화벌이 국가기관도 등장해
이미 퍼진 ‘시장화’ 긍정 활용 의도 북, 유엔제재로 중국 의존 심화
남, 산업공동체 구상으로 풀어야 토론회에서는 그러나 핵 개발 등 정치, 군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만 놓고 보면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시장이 크게 활성화한 것에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임금과 물가인상, 배급 축소와 기업의 자율권 강화를 시도한 7·1 경제관리개선조처가 시행된 지 11년이 되면서 북한에는 시장화, 분권화 및 사유화가 크게 진전된 상태다. 시장이 발달하면서 국가의 계획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으며 시장의 수혜자가 일반 주민에서 권력층으로 확대돼 최근에는 국가기관의 외화벌이 부서 등 권력층이 시장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시장은 이제 안정된 시스템으로 정착했고 북한 당국의 통제 범위를 상당 정도 벗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시장에서 쌀값과 환율이 1년 이상 안정돼 있고, 보통 400~500달러 하는 휴대전화를 200만명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의 형성 가능성 등 우리가 잘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수 공장의 완전독립채산제와 협동농장에 좀더 많은 재량권을 주는 지난해 ‘6·28 방침’(또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도 7·1 조처 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어쩔 수 없게 된 현실을 사후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려는 시도라고 양 교수는 분석했다. 북한의 개혁이 종전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장기에 걸쳐 변화된 현실과 공식제도의 차이를 메워가는 ‘북한식 경제개혁’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경제개발도 하겠다는 병진노선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 개혁에 필수적인 개방의 이점을 북한이 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핵과 경제개발 병진노선이 북한 경제로 보면 자원 배분을 합리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여건이 안 좋은 상태에서 자원을 군사부문에 쏟아 넣어 비효율이 컸다. 이제는 이런 과거의 비정상을 바로잡을 조건이 갖춰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접경지역 개발 등 중국에 의존해 경제개발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북한의 중국 의존 심화가 일방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었다. 김수한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냉전시대부터 밀착과 거리두기를 반복했다”며 “(의존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반드시 제3자를 통한 균형을 추구하는데 이를 염두에 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러시아 등 다자의 틀을 이용해서 철도, 항만무역, 경공업 수출지대 등 동북아의 새 성장동력 창출의 비전을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북한과의 경협이 난관을 넘어 지속되기 위해서는 활로를 찾지 못하는 남한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산업적 보완관계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홍렬 한양대 교수는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방향은 제조업 전반에 걸친 생산분업구조의 형성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수단 및 자원의 확보를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산업공동체 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남북경협은 개성공단을 빼면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160여일 만에 재가동된 개성공단의 한 공장에서 9월 중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6·28방침’으로 우수공장 재량권↑
외화벌이 국가기관도 등장해
이미 퍼진 ‘시장화’ 긍정 활용 의도 북, 유엔제재로 중국 의존 심화
남, 산업공동체 구상으로 풀어야 토론회에서는 그러나 핵 개발 등 정치, 군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만 놓고 보면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북한에서 시장이 크게 활성화한 것에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임금과 물가인상, 배급 축소와 기업의 자율권 강화를 시도한 7·1 경제관리개선조처가 시행된 지 11년이 되면서 북한에는 시장화, 분권화 및 사유화가 크게 진전된 상태다. 시장이 발달하면서 국가의 계획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으며 시장의 수혜자가 일반 주민에서 권력층으로 확대돼 최근에는 국가기관의 외화벌이 부서 등 권력층이 시장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 시장은 이제 안정된 시스템으로 정착했고 북한 당국의 통제 범위를 상당 정도 벗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시장에서 쌀값과 환율이 1년 이상 안정돼 있고, 보통 400~500달러 하는 휴대전화를 200만명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의 형성 가능성 등 우리가 잘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수 공장의 완전독립채산제와 협동농장에 좀더 많은 재량권을 주는 지난해 ‘6·28 방침’(또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도 7·1 조처 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어쩔 수 없게 된 현실을 사후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려는 시도라고 양 교수는 분석했다. 북한의 개혁이 종전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장기에 걸쳐 변화된 현실과 공식제도의 차이를 메워가는 ‘북한식 경제개혁’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경제개발도 하겠다는 병진노선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 개혁에 필수적인 개방의 이점을 북한이 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핵과 경제개발 병진노선이 북한 경제로 보면 자원 배분을 합리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여건이 안 좋은 상태에서 자원을 군사부문에 쏟아 넣어 비효율이 컸다. 이제는 이런 과거의 비정상을 바로잡을 조건이 갖춰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접경지역 개발 등 중국에 의존해 경제개발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북한의 중국 의존 심화가 일방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었다. 김수한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냉전시대부터 밀착과 거리두기를 반복했다”며 “(의존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반드시 제3자를 통한 균형을 추구하는데 이를 염두에 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러시아 등 다자의 틀을 이용해서 철도, 항만무역, 경공업 수출지대 등 동북아의 새 성장동력 창출의 비전을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북한과의 경협이 난관을 넘어 지속되기 위해서는 활로를 찾지 못하는 남한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산업적 보완관계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홍렬 한양대 교수는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방향은 제조업 전반에 걸친 생산분업구조의 형성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수단 및 자원의 확보를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 산업공동체 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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