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만의 작은 도시 태백시에 들어선 4127억원짜리 오투리조트의 모습. 쇠락해가던 탄광도시를 부흥시켜줄 것이라 믿었던 리조트는 이제 3360억원짜리 빚덩어리가 됐다. 시가 부채에 허덕이며 지역 경제는 피폐화하고 있다.(위) 지난달 23일 차량들이 태백시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태백중앙병원으로 가는 공화교를 위태롭게 건너고 있다. 시는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이 다리를 예산 부족으로 보수하지 못하고 있다.
② 장밋빛 전망의 비극 강원도 태백이 빚에 신음하고 있다.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태백은 2008년 4100여억원을 들여 추진한 리조트 사업이 부진에 빠지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골프장과 스키장, 콘도 등을 갖춘 오투리조트는 현재 빚만 3360억원에 이른다. 빚에 짓눌린 태백시는 지난해부터 예산의 10% 가까이를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당장 신규 사업이 줄고 지역단체에 건네는 지원금이 축소됐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한층 더 짙은 불황의 그림자가 태백을 에워싸고 있다. ■ 귀향 청년, 황민철씨의 실망 2008년 6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일하던 황민철(가명·33)씨는 강원도 태백의 오투리조트로 직장을 옮겼다. 태백시가 2001년부터 독자적으로 추진해 만든 종합 리조트였다. “태백이 고향이에요. 시에서 만든 공기업이라 해 겸사겸사 돌아왔죠. 큰돈은 못 벌어도 ‘준공무원’ 신분에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태백시가 리조트를 세운 이유 중 하나는 젊은이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리조트를 만들 경우 인구가 적어도 2000여명은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최대 12만명에 이르던 인구가 5만명대로 줄어들던 상황이었다. 지난달 23일 만난 황씨는 태백시가 바라던 ‘귀향 청년’ 중 한명이었다. 황씨가 입사하고 석달여 뒤 리조트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부푼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20여분 거리에 있는 하이원리조트보다 시설 등 여러 면에서 뒤처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면을 받은 것이다. 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골프장과 스키장을 연 것도 패착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이마트 옆에 구멍가게를 연 셈이죠. 그래도 어느 정도 경쟁이 되리라 봤는데, 품질 차이가 알려지면서 점점 격차가 벌어지더라고요.” 실망은 점차 절망으로 바뀌었다. 오투리조트는 개장 1년여 만에 공사비와 용역비는 물론 직원 월급마저 제때 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스 등 공공요금과 직원 4대 보험료도 체납할 정도였다.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황씨도 2010년 말 리조트를 그만뒀다. “(리조트가) 전반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쉬웠지만 마음을 접었죠.” 그사이 동료 직원과 결혼한 황씨는 태백 시내에 치킨집을 열었다. 개업 초반엔 그럭저럭 장사가 됐다. 그러나 오투리조트의 실패와 함께 태백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가게 운영이 점점 어려워졌다. 가게를 자주 찾던 옛 동료들도 점차 발길을 줄였다. 특히 오투리조트로 인한 빚 부담 때문에 태백시가 긴축 재정을 펴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장사가 급격히 기울었다. “지난해 1월부터 매출이 반토막 나기 시작했어요. 태백 경기가 급속히 나빠진 탓이죠.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메뉴인데 이들도 계속 줄어들고 있고요.” 5년 전 작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태백에 돌아온 황씨는 현재 태백 탈출을 생각하고 있다. “리조트가 살아나면 좋을 텐데…. 경기가 좀 나아지고 가게를 제값에 넘길 수 있게 되면 저도 태백을 떠날 생각이에요.” 그의 가게는 요즘 인수 비용의 절반인 3000만원에 내놔도 살 사람이 나서지 않는다. 황씨와 함께 리조트에 입사했던 230여명의 직원 중 리조트에 남은 직원은 현재 90여명에 불과하다. ■ 감당하기 힘든 빚에 몸살앓는 태백 빚으로 인해 지역 경제에 낀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공무원들이 ‘시에 돈이 없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아요. 뭘 요구하려다가도 지레 포기하게 되죠.” 태백 시민 정성만(가명·40)씨의 얘기다. 정부가 지정하는 ‘재정위기 지자체’가 될 위험에 놓이자 태백시는 지난해 긴축재정을 선언했다. 2012년 164억원, 2013년 227억원, 2014년 197억원을 빚 상환에 썼거나 써야 한다. 예산 규모가 수조원대에 이르는 큰 지자체에 견주면 크지 않은 돈이지만, 연간 예산이 2500억원대인 태백에는 매우 큰 금액이다. 태백시는 “지방채무상환금의 재정 비중이 상당히 커 투자사업이나 시민 복지의 투자비가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역의 군소 건설업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시에서 시행하는 수천만원대의 작은 건설사업을 도맡는 회사들이다. “태백 같은 소도시는 ‘노가다’가 잘 돌아야 돼요. 그런데 시가 긴축재정을 한다며 그런 사업을 다 줄였어요.” 태백에서 중장비 대여업을 하는 장성수(44)씨의 말이다. 포클레인 3대 등 중장비 다섯대를 가진 장씨는 요즘 장비를 돌리는 날이 한달에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할부금이나 기사 월급 등을 고려하면 최소 20일 이상 장비를 돌려야 한다. 동료들과 늘 식당에서 밥·술을 사먹던 장씨지만 지금은 일 끝나고 술 한잔을 해도 가게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소주를 사다 마신다. “오투리조트 때문에 시민들이 겪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큰 기대를 모은 거대 사업이 실패하면서 주민들 머릿속에 패배 의식이 커졌고요. 그런데도 리조트를 추진한 사람들 중에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연 100만 관광’ 실제론 18만명
개장과 동시에 연 수백억 적자
태백시 지방재정 위기 닥치자 시민복지 지원금부터 줄여
“경제성 없음 사전예측 나왔지만
시에서 결과 뒤집어 공사강행
매각도 안돼 세금 블랙홀 전락” 어린이들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시는 지난해부터 유소년 축구팀에 지원하는 예산을 10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줄였다. 지역 내 어린이 도서관에 지원하는 도서구입 예산도 10%씩 줄였다. 시 생활체육회 관계자는 “예전에는 시 지원으로 1년에 두세번 유소년 축구대회에 나갔는데 지난해부터는 한번으로 줄였다”고 했다. 시가 무료로 지원하던 유니폼도 이젠 돈을 받고 지급하고 있다. 2년 새 유소년 축구팀 등록 학생은 60여명에서 40여명으로 줄었다. 돈줄이 마르다 보니 위험시설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시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태백중앙병원 앞의 낡고 오래된 다리인 ‘공화교’는 지난해 안전도 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총 다섯 등급 가운데 네번째로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하며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태이다. 50m짜리 다리는 폭이 좁고 인도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차량간 사고는 물론 노인들이나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를 자주 겪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이 다리를 하루 1000명 이상 이용하는데, 벌써 몇년 전부터 시에 위험성을 알리고 새로 짓거나 보수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늘 기다려 달라고만 하고, 새로 짓지도, 보수 공사를 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연식 태백시장은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태백시의회 의장이 소유한 건물을 매입하는 방안을 포함한 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안호진 태백희망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빚을 갚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이 급하지도 않은 공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김해·용인·성남…제2, 제3의 태백들 지자체 차원의 무리한 사회간접자본 사업 진행과 이의 실패로 인한 시민 복지의 감소는 비단 태백만의 문제가 아니다. 2년 전 개통한 부산~김해 경전철은 경남 김해시의 세금 먹는 하마가 돼 버렸다. 승객이 애초 예측했던 것의 5분의 1 수준도 안 되면서 민자사업자한테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제도에 따라 20년 동안 연평균 750억원을 물어줘야 한다. 당장 내년도 예산에서 지난해 엠아르지 정산분 364억원을 빼면, 김해시가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가용재원은 사실상 0원이다. 김상진 김해시 기획예산과 계장은 “신규 사업은 아예 못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방범용 폐회로티브이(CCTV) 설치 및 교체, 교통신호기 설치, 체육시설 조성, 저지대 침수방지 사업 등 주민 편익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경기도 용인시도 지난 4월 개통한 경전철로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870억원씩의 세금을 날려야 할 판이다. 엠아르지에 따른 운영비 지원과 공사비를 조달하면서 발행한 지방채 원리금 상환액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인근 성남시는 이미 2010년 3200억원짜리 호화 청사 건립과 공원 조성 등 지역 개발 사업에 세금을 퍼붓다가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기도 했다. 결국 이로 인한 피해는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 거짓 사업성 평가, 재앙을 불러오다 태백에 재앙을 가져온 오투리조트는 어떻게 잉태됐을까? 태백시의 주된 수입원이었던 광산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을 닫기 시작한다. 산업화 과정의 주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이 석유로 대체되면서 쓰임새가 줄어든 탓이었다. 지역민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정부는 ‘폐광지역 특별법’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지원책을 내놓는다. 2000년대 초 지역에서 관선·민선을 합쳐 3선 시장을 지낸 홍순일 전 태백시장이 리조트 사업을 주도했고, 주민들 대다수가 이에 호응했다. “사업성이 낮고, 이마저도 무리하게 진행됐지만 반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카지노를 유치한 정선을 보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죠. 반대하면 빨갱이 취급을 당했으니까요.” 장연철 태백시민연대 위원장의 얘기다. 오투리조트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부풀려진 수요예측과 이를 통한 무리한 사업 추진에 있다. 태백시는 리조트를 만들 경우 관광객이 연간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지난해 리조트 방문객 수는 18만명에 불과했다. 사업성 분석 결과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태백시는 이를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둔갑시켜 발표하기도 했다. 2003년 사업 타당성 평가를 수행한 도화건설이 작성한 기본계획을 보면, 현재 가치가 마이너스 216억원으로 계산돼 있지만, 두달 뒤 태백시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현재 가치가 플러스 441억원으로 계산돼 있다. 유태호 태백시의원(민주당)은 “시가 수요를 부풀리고 거짓으로 사업성을 발표했다. 제대로 조사하고 발표했다면 사업 추진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투리조트는 2010년 정부로부터 매각 명령을 받았다. 시는 2년 전부터 여러차례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살 사람이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오투리조트를 짓누르는 빚을 조정하고 영업을 정상화한 뒤에 매각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유태호 의원은 “완공 이후 한번도 제대로 된 영업을 못했다. 이대로 팔면 시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제대로 진단해서 재무구조를 조정한 뒤에 본격적인 매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명재 오투리조트 노조위원장은 “딱 2000억원 정도만 들여 건설했다면 지금처럼 빚에 시달리지 않고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빚 조정을 해서 살려나가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백/글·사진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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