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에서 43㎞ 떨어진 서해 신안군 도초도 들판에 ‘사파리 아일랜드 조성 예정 지구’라고 한 글자씩 크게 적은 간판들이 서 있다. 신안/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부풀려지는 SOC 수요예측]
경제적으로 발주처에 종속
“발주처 요구 거절 어렵다”
전문가들 ‘정치적 수단’ 전락 언론·건설사·관료·정치인·학자
‘5각 동맹’ 보이지 않는 압력 은밀한 관계 깨려면 내부고발 필요
본인·조직 피해입을까 다들 쉬쉬 전문가가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이들이 경제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발주처에 종속돼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상위 기관’이거나 ‘단골손님’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발주처의 요구를, ‘을’인 전문가들이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대구경북연구원과 같은 곳은 대구시와 경상북도 등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다. 수요예측을 많이 하는 국토연구원과 교통연구원은 국토교통부의 직·간접적 영향권 아래에 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획재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민간업체에 소속된 전문가의 경우 부담이 더욱 크다. 강현수 중부대 교수(도시계획학)는 “민간업체의 목표는 사업 수주와 이를 통한 생존이다. 재개발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의뢰받았을 때, 설령 사업성이 떨어지더라도 사업성이 있다고 결과를 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야 관계를 유지하고, 큰 돈을 벌 수 있는 설계나 시공 용역 등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주처 위에는 ‘슈퍼 갑’이 존재한다. 바로 정치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설계회사 직원은 ‘국회의원→정부·발주처→전문가’의 차례로 압력이 전달된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국회의원이 워낙 설쳐댄다. 의원이 국토부 실무자를 여러차례 불러 압박을 가하면, 국토부는 발주처를 압박하고, 발주처는 다시 우리를 압박하게 된다”고 말했다. ■ 끈끈한 5각 동맹 국내 건설업계는 건설회사와 관료, 정치인에 언론과 학자가 더해져 끈끈한 ‘5각동맹’을 이루고 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일본은 ‘관료-정치인-건설협회’의 3각동맹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언론’과 ‘학자’가 가세해 5각 동맹의 양상을 띤다”고 말했다. 언론의 경우 해당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보도해 분위기를 띄우고, 이를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달한다. 시장이나 도지사, 국회의원 등은 선거를 의식해 이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학계는 프로젝트로 연결돼 있다. 특히 이과 계열 연구실의 경우 국책 프로젝트를 통해 운영비를 마련하는 상황에서 소신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관료는 예산과 권한 및 조직의 확대를 위해 되지 않는 사업도 되는 쪽으로 유도해 나간다. 문제는 이런 관계가 은밀하게 구성돼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한 지방자치 단체에 소속된 연구원은 “지자체장이나 정치인의 압력은 공식적인 방법이 아니고 은밀한 형태로 내려온다. 압력을 받은 연구원의 수장은 ‘말 잘 듣는 연구원’을 시켜 연구를 하도록 한다. 승진을 앞두고 있거나 새내기 연구원에게 맡기는 식이다. 원장은 이들에게 노골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이번 사업은 잘 해야 한다’는 식으로 슬쩍 얘기한다. 척하면 척이다. 이런 말 한 마디에도 연구원은 엄청난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일어난 소동은 이런 은밀한 구조의 단면을 보여준다. 2007년 대구경북연구원이 진행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관련 타당성 조사 결과를 놓고 5년여 만인 지난해 뒤늦게 ‘시의 요구로 부풀려졌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연구원은 대회의 경제적 파급 효과(생산유발)를 당초 4075억원으로 발표했다가 넉달 만에 5조5400억원으로 13배 늘렸다. 이 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의 요구를 받지 않았고,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해당 연구위원은 지역에서 시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은밀한 관계를 깨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쉽지 않다. ‘동맹’이라 불릴 정도로 강고하게 묶여 있는 탓이다. 고발할 경우 본인은 물론 조직에도 막대한 피해가 돌아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한겨레>가 취재를 위해 만난 다수의 전문가들이 구체적 사례를 들어 얘기하거나 본인의 직접적인 경험을 얘기하는 것을 한사코 피한 이유이다. 정치적 압력에 억눌린 전문가들의 자조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제적 보상도 크지 않고, 사회적 대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만 묻는다’는 것이다. 한 설계·엔지니어링 업체의 직원은 “우리는 힘이 없다. 위에서 찍어 누르면 찍히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 책임은 우리에게만 다 물으려 한다. 이렇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이쪽 업계로 오는 것을 점점 꺼리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런 항변에 ‘지식범죄’라는 비판이 나온다. 임석민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구조상 어쩔수 없다는 핑계를 대지만, 결국 따져보면 현재의 지위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너무 파괴적이다. 지식범죄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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