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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수천억짜리 도로 수요조사, 고작 5천만원 들여 6개월새 뚝딱

등록 2013-11-04 20:29수정 2013-11-04 21:58

강원 양양국제공항, 전남 무안국제공항 등 지역 안배와 정치 논리에 따라 수천억원을 들여 추진한 공항들 가운데 수요가 나오지 않는 곳들이 적지 않다. 사진은 밀양시청 입구에 세워진 밀양신공항 유치 조형물. 밀양 /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강원 양양국제공항, 전남 무안국제공항 등 지역 안배와 정치 논리에 따라 수천억원을 들여 추진한 공항들 가운데 수요가 나오지 않는 곳들이 적지 않다. 사진은 밀양시청 입구에 세워진 밀양신공항 유치 조형물. 밀양 /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부풀려지는 SOC 수요예측]
④ 예측조사 중요성 무시하는 풍토
“수천억원짜리 도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요예측에 들이는 비용은 5000만원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간도 6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사업 지역의 실제 교통상황을 재현하기 위한 조사조차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한국교통연구원에 소속된 한 수요예측 전문가의 얘기다.

한 해 20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의 ‘사업 설계도’가 매우 부실하게 그려지고 있다. 기술적 한계와 더불어 이를 제대로 그리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제도적 문제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무엇보다 ‘예측’이나 ‘계획’을 중시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로 지적된다. 수요예측은 사업 규모는 물론이고 사업 개시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여기에 들이는 비용이나 노력은 전체 사업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청량리~덕소 복선전철 사업의 경우, 전체 사업비는 4272억원이 들었지만 수요예측 등 타당성조사에 들어간 비용은 5000만원에 불과하다.

예측을 경시하는 문화는 수요예측 진행자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 국가재정이 300억원(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투입된 사업에 대해 진행하는 예비타당성조사의 경우, 주로 대학교수들이 수요예측을 맡아 진행하는데 실제 조사와 실무는 대학원생이 맡는 경우가 많다. 한 설계회사 임원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학원생의 수준에 따라 수요예측의 정확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아닌, 2년마다 바뀌는 대학원생들이 수천억원짜리 사업의 수요예측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의 수요예측이 교수의 작업으로 인식되고, 이 결과는 결국 예비타당성조사를 주도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작업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되면 부실한 조사도 다음 단계에서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 임원은 “수요조사는 기본적으로 한국개발연구원의 예비타당성 조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국가의 작업으로 인식된다. 실시설계를 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측 수요를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클릭하면 이미지가 크게 보입니다.

교수에 맡겨진 예비타당성조사
실제론 대학원생이 실무 담당 불구
KDI가 작업한 결과로 간주돼
교통 수요예측 기본자료 KTDB
개선작업 비용 연 2억~3억 그쳐
미국의 10%에 불과해 내용 부실

수요예측의 바탕이 되는 기본 통계도 문제점이 많다. 특히 교통 수요예측의 기본자료로 쓰이는 케이티디비(KTDB·Korea Transport Data Base)의 문제점은 수요예측 오류의 단골 원인으로 지적된다. 케이티디비는 국가 차원에서 교통조사를 실시하고 기초자료를 수집해 만든 데이터베이스로, 1999년 국가통합교통체계효율화법을 제정하면서 마련됐다.

“교통데이터베이스 센터에 연간 70억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한다고 하지만, 실제 주요 디비 자료를 개선하는 데 쓰이는 돈은 고작 2억~3억원에 불과하다.” 수년 동안 케이티디비 점검위원을 지낸 교통기술사 ㄱ씨의 설명이다. ㄱ씨는 “수조원짜리 도로나 철도의 수요를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기본 자료의 정확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수요예측의 밑바탕이 되는 케이티디비에 쓰이는 예산이 매우 적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예측 전문가 ㄴ씨도 정부의 지원 부족을 꼬집는다. 그는 “케이티디비의 통행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지가 8~9장 정도 된다. 이 조사를 진행하는 단가가 우리나라의 경우 1만~2만원이다. 전문적인 조사인데 딱 인건비 정도만 주는 것이다. 미국의 10분의 1이다. 그만큼 조사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사 범위도 선진국에 견줘 좁다. 미국·일본 등은 면적과 종사자, 인구, 차량 수 등의 지표를 조사하는 단위가 도시의 소규모 블록까지 정밀하게 내려가지만, 우리나라는 행정동 단위까지만 조사가 진행된다. 정부의 지원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탓이다. 경력 20년차 교통기술사는 “수요예측 잘못으로 한 사업당 낭비되는 예산만 수십억~수백억원이다. 수백억원을 써서라도 데이터베이스를 정확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낡은 수요예측 모형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장수은 서울대 교수(환경계획학)는 “수요예측을 할 때 쓰이는 4단계 모형은 과거에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통행 패턴을 설명하는 데는 굉장히 취약하다. 현재 우리는 퇴근 뒤에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많은 일을 한다. 이런 점을 반영한 모델이 필요한데 아직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수요예측 결과를 하나가 아닌 여러 개로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수요예측 결과를 하나가 아닌 3개 정도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일반인도 알기 쉽도록 복잡한 조건을 붙이지 말고, 예컨대 ‘가장 낙관적인 예상’ ‘보통’ ‘가장 비관적인 예상’ 정도로 나누면 된다. 시민이나 정치가들이 사업의 위험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사업 개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요예측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3~6개월 뒤를 예측하는 경제성장률도 매번 빗나간다. 5~10년 뒤를 예상하는 교통 수요예측은 어떻겠느냐”고 항변한다. 어느 정도 오차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의도적인 부풀리기나 조작 등이 시도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2003년부터 영국·미국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준거집단 예측법’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개별 사업의 예측 비용을 다른 비슷한 사업의 경험에 근거해 재조정하는 것으로, 의도적인 조작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현수 중부대 교수는 “어떤 다리의 통행량을 조사한다면, 비슷한 조건의 다른 다리들을 먼저 찾는다. 그리고 이 다리들을 통해 새로 만들 다리의 통행량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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