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패치’ 김연아 보도에서 뭘 배울까

연예 매체 ‘디스패치’ 누리집 갈무리.

[사회적 경제] 이봉현의 소통과 불통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론이 만들어내는 상품은 사회에 윤활유처럼 흐르는 ‘신뢰’다. 얼핏 본 식당 주방이 더러우면 음식이 아무리 정갈해 보여도 입맛이 떨어지듯, 언론이 신뢰라는 무형자본을 만들려면 스스로 믿음직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주를 달군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열애설을 처음 보도한 연예 매체 <디스패치> 누리집에 가면 제호 위에 ‘뉴스는 팩트다’라고 써놨다. 바른 언론의 ‘가나다’인 ‘팩트’(사실)에 대한 엄정함은 파파라치라 불리는 매체에도 금과옥조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디스패치는 지난해 초 가수 비(정지훈)와 탤런트 김태희의 열애설을 포함해 여러 건의 특종을 터뜨렸다. 이번 김연아 보도도 6개월을 잠행 취재해서 얻어냈다고 한다.

사실에 대한 디스패치의 집요함은 그렇다 치고, 이번 김연아 보도는 몇 가지 짚어볼 점이 있다. 먼저 공익이 크게 걸린 일도 아닌데 내밀한 사생활을 흥신소 직원처럼 달라붙어 알아낸 뒤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의문이다. 아울러 찍은 사진을 동영상처럼 편집해 통신사에 제공한 것이 상업적 목적으로 초상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그런데 디스패치에 이은 다른 언론사들의 후속 보도는 한층 문제가 많았다. 기사를 받아쓰는 데 그치지 않고 밀월여행을 했다는 둥 확인되지도 않은 이야기를 사실인 양 부풀려 보도했다. 이런 기사들의 대부분은 포털사이트에서 클릭을 유도해 광고 수익을 높이려는 ‘어뷰징’ 수법으로 작성됐다. ‘~알고 보니’, ‘충격’, ‘이럴 수가’ 등이 제목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드물었다. 3일 동안 3000여개의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는 집계도 있다.

‘김연아 김원중 열애 인정, 몰래 즐긴 데이트 코스는 … 이럴 수가’, ‘김연아 데이트 여왕의 스킨십~ 올들어 가장 쇼킹한 사건!’, ‘김연아 김원중 열애 인정, 이미 휴가도 함께 보낸 사이? … 대박?’ 등이 일부 예이다. 군소 인터넷 매체는 물론 전국지라는 신문사조차 버젓이 ‘어뷰징’에 동참했다.

이러다 보니 10일 내놓은 디스패치의 해명이 오히려 신선해 보인다. 조회 수를 위해 낚시질을 하는 매체들과 달리 자신들은 사진 등 근거가 확실한 네 꼭지의 기사 이후 어떤 후속 보도도 자제했다는 것이다. 따라다니는 취재도 생일, 크리스마스처럼 둘이 만날 만한 날을 골라서 했다는 것이다. 또 보도 시점 역시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로 조정했다고 한다.

김연아 열애설 보도는 언론 환경이 파파라치라는 말을 듣는 언론사와 이른바 주류 언론사의 구분이 안 갈 만큼 혼탁해진 상황임을 보여줬다. 신문, 방송이 그동안 권력과 광고주에게 휘둘려 진실을 외면하곤 했다면 포털에 명줄이 잡힌 지금은 클릭을 위해 그나마 있는 신뢰마저 허무는 일을 하고 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