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안 영산대 교수
한성안의 경제산책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절대 진리처럼 암송되는 공자의 이 말씀에 대해 불만이 많다. 첫째, 그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등 불연속적 행위들을 연속적으로 본 점인데, 그 때문에 한국인들이 질적으로 다른 분석 단위들을 동질적 단위로 오해하게 되었다는 게 나의 불만이다. 이는 주류경제학이 범하고 있는 전형적 오류다. 둘째 불만은 이마저도 최근 우리 사회가 악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가 살던 농경사회에서 관리의 대상은 가족과 국가가 고작이었다. 요즘 흔히 보이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업을 경영할 필요가 없었으니 ‘수신제가’ 후 곧바로 ‘치국’으로 넘어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경영’이 그 사이를 슬며시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곧, 한국 사회에서 수신제가‘경영’치국평천하의 왜곡 버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경영의 최고 목표는 성공과 영리다. 이를 달성하자면 철저한 자기관리, 곧 ‘수신’이 사장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모든 열매를 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수신한다. 반면 가장은 개인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 ‘제가’하지 않는다. 경영과 제가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장으로부터 수신제가한 ‘철인’을 상상하면 안 된다.
가정의 규모는 작기 때문에 수신만으로도 관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100명 이상이 고용된 기업에서 구성원을 통제하자면 사장은 인덕과 눈물보다 화폐적 보상과 해고의 위협을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명령불복종 사원과 낙오자는 따뜻하게 배려되기보다 가차 없이 제거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그는 기업이라는 ‘사적 왕국’에서 독재자다. 제가 원리로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업과 가정은 수단과 원리의 측면에서 이처럼 다르다.
‘치국’은 어떤가? 국가의 규모는 기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거기엔 다양한 이해관계와 세계관의 소유자들이 공존한다. 착한 승자는 물론 억울한 패자도 많다. 이 거대하고 복잡한 집단이 명령 하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된다. 나아가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런 이익에 대한 헌신을 화폐와 위협으로 끌어낼 수 없다. 따라서 치국을 위해서는 독재보다 민주주의가, 명령, 위협, 화폐보다 합의, 존중, 도덕적 호소가 더 효과적이다. 기업과 가정이 다르듯이 기업과 국가도 이처럼 다르다는 것이다. 기업과 국가를 동질적 집단으로 취급해 버리는 것은 주류경제학의 연구방법이다. 온 국민이 이 잘못된 방법론의 포로로 되어 있다. 공자도 여기에 한몫했다.
안철수 열풍이 거세다. 온 국민이 그의 기업가적 성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의 쓰라린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경영에 성공한 사장이 치국에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고민의 와중에 민주당과 안철수가 힘을 합쳤다니 반갑다. ‘눈물의 진보’와 ‘착한 성공’이 결합하여 ‘새정치’의 혁신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창조가 일어나려면 유권자는 물론 안철수도 습관화된 주류경제학의 잘못된 연구방법을 먼저 파괴해야 한다.
한성안 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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