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서울시사회적경제아이디어대회(위키서울) 1기 선정팀들이 지난 3일 서울시 은평구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1차 오리엔테이션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사회적 경제] 위키서울 ‘잼있는인생’
“내 인생은 항상/ 잼처럼 쳐발리지만// 퍽퍽한 식빵 같은 인생에/ 달달함을 더해주는 거겠지// 역시 잼있는 인생이/잼이지지// 이런잼장”(<잼있는인생>)
그들의 프로젝트는 자작시 한 편에서 시작됐다.
갖가지 인턴 체험으로 점철된 3년간의 비정규직을 막 끝낸 이예지(27)씨와 본격적인 취업전쟁에 뛰어든 지 3개월 만에 현실을 깨닫고 ‘멘붕’에 빠진 최만득(25)씨가 올해 4월 만났다. 취업준비생의 팍팍한 삶을 토로하다 이씨의 자작시를 본 최씨의 가슴에 ‘잼’이란 단어가 꽂혔다. 당장 귀갓길에 딸기 1㎏을 사서 잼을 만들었다. 유리병에 담고 ‘베리베리베리잼’이라 명명해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재미있는 잼을 먹고 싶다는 지인들의 댓글이 쇄도했다.
낙과·못난이 과일로 잼 만들고
브랜딩 더해 판다는 프로젝트
제조허가 받아 조리공간 마련
‘위키서울’에 아이디어 등록
“실현 가능성 높다” 예산 지원
장터 퍼포먼스로 인기 폭발 낙과-취업준비생 동병상련 프로젝트 고무된 둘은 4월8일 별도의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jaminlife)을 만들었고, 친구에게 응원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에게 추첨을 통해 수제 블루베리잼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끝없이 우울해(海) 잠수는, 이제 그만 때려!’이란 이벤트 문구와 ‘베리블루? 블루베리잼’이란 제품명이 어우러지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져나갔다. 6·4 지방선거에서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의 ‘미안하다’ 발언이 유행하자 사과로 만든 ‘미안해 사과할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자두로 만든 ‘자두자두졸려 자두잼’, 외로운 청춘들을 위한 ‘참외로운 참외잼’ 등의 레시피도 공개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준비생의 삶에서 탈출해 ‘한 번이라도 신나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 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서울 이태원의 카페 한쪽에 조리공간을 마련하고 식품제조 허가도 정식으로 받았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2014서울시사회적경제아이디어대회(위키서울·wikiseoul.com)에 아이디어를 등록했다. 낙과와 못난이 과일로 잼을 만들고, 재료와 연관된 재미있는 이야기와 브랜딩으로 부가가치를 더해 팔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맛은 있지만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판매되지 않는 낙과와 스펙 경쟁에서 낙오된 취업준비생의 동병상련 프로젝트는 위키서울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위키서울서 호평, 362만원 투자받아
지난달 20일 열린 ‘위키서울’ 1기 아이디어 심사회에서 ‘마케팅·네이밍 센스가 돋보이며, 취업준비생과 낙과를 연결지은 메시지가 재미있다’, ‘사업 관련 구체적인 계획이 있고, 상품을 직접 제작할 역량이 있어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반면 ‘낙과 자체를 판매하는 기존 사업과 차별화가 필요하다’, ‘식품제조 및 유통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향후 로컬푸드 매장, 생협 등 가치에 맞는 판로 확보도 모색하라’는 조언도 더해졌다. 심사위원 10명의 모의투자를 통해 ‘잼있는인생’팀에 지원키로 결정된 예산은 총 362만원이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첫 오프라인 판매를 시작한 이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사회적경제장터에서는 가지고 나간 32개의 잼을 모두 팔았다. 약사 가운을 입고 재미있는 삶을 위해 ‘처방잼’ 1일 1회 복용을 홍보하는 퍼포먼스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삶이 재미없어서 잼을 만들었다’고 하니 40, 50대 아주머니들도 빵빵 터지셨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취업을 위한 경력을 위해 위키서울에 지원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정색을 했다. 이씨는 “소위 ‘스펙’을 고려하면 위키서울이 아니라 대기업 공모전에 나갔을 것”이라며 “위키서울에서 창업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스펙이 아닌 실행을 위한 공모전
이씨는 지난해 위키서울에도 서울시 쓰레기통의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하자는 ‘쓰리디’ 아이디어를 등록해 선정됐다. 그 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디자인의 쓰레기통을 구현하며 후속작업이 전혀 없는 다른 공모전과 차별화된 위키서울만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위키서울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여럿이 함께 협력하는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시민 생활 속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 대회다. 서울시는 문제해결형 사회적 경제 조직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2012년 이 행사를 시작해 해마다 열고 있다. 1회 위키서울 선정팀인 ‘민달팽이 유니온’은 청년들에게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안정적이며 쾌적한 주거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비영리주거공급협동조합으로 조직을 구체화했다. 현재 서울시 남가좌동에 달팽이집을 만들어 운영하고 주거 관련 상담을 제공하는 주거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시도 같은 취지로 에스에이치(SH)공사와 함께 홍은동에 청년공공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을 매입해 운영하고 있다.
청년들이 협동을 통해 경제적 자립과 구체적인 꿈을 실현하는 금융생활협동조합 ‘토닥토닥’, 전통시장 활성화와 청년 주거 문제 해법 마련을 위한 지역 기반 조직 ‘오늘공작소’, 정장공유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유기업 ‘열린옷장’ 등도 1회 위키서울이 배출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다. 서울시는 ‘서울시민 열린옷장’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위키서울의 성과를 행정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시민의 자발적 아이디어가 행정으로
올 1기 심사회에서는 잼있는인생 외에도 전화로 노인의 고독사를 예방하는 ‘안녕하세요!’, 노인·외국인을 위해 버스노선도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한눈에 보는 버스노선도’, 버려진 양말을 강아지 옷, 변기 커버 등으로 재탄생시키는 ‘양말로 만드는 따뜻한 세상’ 등의 아이디어가 선정됐다.
이들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11월 말까지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12월에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지난 3일 서울시 은평구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열린 1차 오리엔테이션에서 김재춘 가치혼합경영연구소장의 조언을 받았다. 위키서울은 연말까지 총 서른 팀을 선정해 팀당 최대 500만원의 실행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내년 2월에는 선정된 팀들의 3개월간 실행 결과를 공개하는 성과공유회를 열어 우수 열 팀을 선발해 ‘서울시 상’을 시상한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anni@hani.co.kr
브랜딩 더해 판다는 프로젝트
제조허가 받아 조리공간 마련
‘위키서울’에 아이디어 등록
“실현 가능성 높다” 예산 지원
장터 퍼포먼스로 인기 폭발 낙과-취업준비생 동병상련 프로젝트 고무된 둘은 4월8일 별도의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jaminlife)을 만들었고, 친구에게 응원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에게 추첨을 통해 수제 블루베리잼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끝없이 우울해(海) 잠수는, 이제 그만 때려!’이란 이벤트 문구와 ‘베리블루? 블루베리잼’이란 제품명이 어우러지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져나갔다. 6·4 지방선거에서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의 ‘미안하다’ 발언이 유행하자 사과로 만든 ‘미안해 사과할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자두로 만든 ‘자두자두졸려 자두잼’, 외로운 청춘들을 위한 ‘참외로운 참외잼’ 등의 레시피도 공개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준비생의 삶에서 탈출해 ‘한 번이라도 신나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 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서울 이태원의 카페 한쪽에 조리공간을 마련하고 식품제조 허가도 정식으로 받았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2014서울시사회적경제아이디어대회(위키서울·wikiseoul.com)에 아이디어를 등록했다. 낙과와 못난이 과일로 잼을 만들고, 재료와 연관된 재미있는 이야기와 브랜딩으로 부가가치를 더해 팔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맛은 있지만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판매되지 않는 낙과와 스펙 경쟁에서 낙오된 취업준비생의 동병상련 프로젝트는 위키서울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위키서울서 호평, 362만원 투자받아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사회적경제장터에서 최만득씨가 약사 가운을 입고 처방잼을 팔고 있다. 잼있는인생 제공
‘잼있는인생’팀의 최만득(왼쪽)씨와 이예지씨. 잼있는인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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