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당 346원 지급’ 정부 방침에
택시노조들 일제히 반대 목소리
“차량 구입·유지비 비싸 부담 늘고
유해물질 배출 많아 건강·환경 위협”
환경부 등도 대기질 악화 우려 반대
택시노조들 일제히 반대 목소리
“차량 구입·유지비 비싸 부담 늘고
유해물질 배출 많아 건강·환경 위협”
환경부 등도 대기질 악화 우려 반대
택시기사들이 뿔났다. 정부가 ‘돈을 주겠다’고 해서다. 최근 세수부족으로 끙끙 앓는 정부가 없는 살림 쪼개서 돈을 주겠다는데 정작 돈을 받게 된 이들은 ‘안 받겠다’고 난리다.
29일 정부와 관련 업계 말을 종합하면, 국토교통부가 여객자동차 유가보조금 지급 지침 개정안 행정예고를 마치자 택시노조 양대 단체가 27일 국회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등 반대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지금껏 택시는 엘피가스(LPG)를 연료로 쓰면 221원의 유가 보조금을 받았지만 경유를 쓰면 아무런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 9월부터는 경유를 써도 리터당 346원의 유가보조금을 받게 된다.
현재 택시 엘피가스 가격은 유가보조금을 적용하면 리터당 773원으로, 리터당 1564원인 경유보다 훨씬 싸다. 하지만 경유 유가보조금이 시행될 경우 연비를 고려하면 연료비 총액은 엇비슷하게 맞춰진다. 현재 택시 업계는 거의 대부분 엘피가스를 쓰면서 연료값을 업주와 택시기사가 분담하고 있다. 국토부는 당·정·청 합의를 거친 이번 지침 개정으로 연간 1만대씩 택시의 경유 차량 전환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가 돈을 준다는데 택시기사들은 왜 반발할까? 일단 이 돈이 기사 주머니에 보탬이 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오염·경유차 흔들림 등으로 기사들의 건강권은 심각하게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임승운 정책본부장은 “택시업주들은 날마다 내는 12만원 안팎의 사납금에 추가로 2000~5000원씩, 연간 120만~300만원을 신차 비용으로 2년간 기사에게 부담시킨다”며 “경유 택시는 구입·유지 비용이 300만~500만원 비싼데 이 부담이 기사들한테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유차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배출로 환경·건강 유해성이 큰데, 32만명 택시기사들은 하루 10~14시간 영업을 하면서 확대된 환경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다”고 우려했다.
도심 대기질 악화와 건강권 침해에 대한 우려는 환경부, 서울시, 환경단체 등에서도 쏟아진다. 환경부는 애초 부처협의 때 반대 목소리를 냈고, 28일에는 경유 택시 대책 토론회를 열었다. 자동차부품연구원 발표 자료를 보면, ‘그랜저2.2 디젤’과 ‘케이5(K5) 엘피지’ 차량을 비교 주행 시험하니 인천-광화문 왕복 45㎞를 달릴 때 경유 차가 질소산화물을 29배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델·배기량에 따라 격차가 있지만 경유 차 유해성이 훨씬 크다는 어림 짐작이 가능하다.
환경부와 서울시 등이 지난 10년간 수도권 대기질 개선에 4조2000억원 예산을 투입했던 점을 고려하면 경유 택시 도입을 지원하는 것은 상충되는 목적에 세금이 낭비되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택시는 전국 25만대 가운데 54%인 13만5000여대가 수도권에서 운행하는 탓에 서울시는 정책 재검토나 연기를 원한다. 하루 20시간 넘게 운행하는 택시 1대는 일반 경유 승용차가 16대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추산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유차는 2000년 350만대로 전체 등록차량의 30%였으나 올 9월말 현재 780만대로 비중이 39%까지 늘었다.
경유 택시 도입·확대로 덕을 보는 것은 불황기에 남아도는 경유의 추가 수요처 확보가 필요한 정유 업계와 ‘택시 수송에너지 다원화’라는 대통령 공약 이행실적이 필요한 국토부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쪽은 “경유 택시 도입 때 사회적 비용 증가가 명백한데 유가보조금 지침 개정을 강행하는 것은 혈세 낭비”라며 “경유 생산량 50% 이상을 국내에서 소진하지 못하는 정유업계 고충 해결과 대통령 공약 이행 말고 어떤 득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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