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8%·브렌트유 6% 떨어져
쿠웨이트 “시장가격 받아들일 것”
내년 6월 이전 회의 일정 없어
국내 휘발유 ℓ당 1600원대 확산
정유 이어 석유화학업계도 침체 우려
쿠웨이트 “시장가격 받아들일 것”
내년 6월 이전 회의 일정 없어
국내 휘발유 ℓ당 1600원대 확산
정유 이어 석유화학업계도 침체 우려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의 원유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했다. 유가 하락은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엔 지출 부담을 줄여주지만, 수입물가 하락에 따른 국내 물가 하락 압력과 무역수지 흑자 확대로 인한 원화 강세 압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도 침체의 늪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오펙은 27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례회의에서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기존 수준인 하루 3000만배럴로 유지하자고 합의했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는 추수감사절로 휴장했지만 전자거래에서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WTI) 원유가 한때 배럴당 67.75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전날 종가보다 8%나 추락한 것이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6% 이상 빠진 72.58달러로 장을 마감한 데 이어 28일에는 71.2달러까지 밀리며 저가를 계속 고쳐 쓰고 있다. 이런 유가 수준은 2010년 이래 4년여 만이다. 국제유가는 올해 초에 견주면 35%가량 떨어진 수준이다.
유가 하락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펙은 내년 6월 정례회의 이전에 감산 여부를 재검토할 임시 일정도 잡지 않았다. 이를 두고, 생산단가가 높은 미국발 셰일혁명을 유가 하락으로 저지하기 위해 오펙 회원국들이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압둘라 바드리 오펙 사무총장은 “유가가 떨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서둘러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국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은 연중 최저치인 리터당 1711.76원으로 내려왔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미 리터당 평균 1600원대에 접어든 곳이 3분의 1가량 되고 서울에서도 셀프주유소를 중심으로 1600원대 주유소가 확산되고 있다. 세금 영향 탓에 국내 휘발유값의 연초 대비 하락폭은 9.4%가량으로 국제유가에 견줘 작지만, 앞으로 하락 체감도가 좀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수입물가 하락도 더 빨라지게 됐다. 우리나라 하루 원유 소비량은 200만배럴 수준으로, 원유 수입액만 연간 1000억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유가 급락이 지속되면서 올 10월 수입액은 72억달러로 지난해 같은달 88억달러보다 15억달러나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무역수지 흑자폭이 커져 원화 강세 압력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유가 하락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는 내년도 전망을 더 어둡게 보고 있다. 올 한해 정유업계가 침체, 석유화학업계가 후퇴를 겪었다면, 내년도에는 석유화학까지 침체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의 강유진 연구원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원유 공급 조절자 노릇을 했는데, 1985~86년에 미국 석유회사들의 증산을 견제하려고 저가경쟁을 벌여 7개월 만에 국제유가를 64% 떨어뜨린 적이 있다”며 “30년 만에 그때와 유사한 국면이 열리면서 유가 저점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9월말 배럴당 40달러대 전망이 처음 나왔을 땐 극단적 견해로 치부됐으나, 오펙 이후 비관론자들한테는 30달러대 전망까지 득세하는 상황이다.
정세라 조기원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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