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가계대출 7조 급증
KDI·입법조사처 등
“대출규제 다시 강화 검토해야”
부동산 경기 위축될까
정부는 ‘대출총량 규제’ 외면
KDI·입법조사처 등
“대출규제 다시 강화 검토해야”
부동산 경기 위축될까
정부는 ‘대출총량 규제’ 외면
은행의 가계대출이 11월 한달 동안 7조원 가까이 급증하며 전달에 이어 역대 최대 수준의 증가 폭을 기록했다. 10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회 입법조사처가 가계부채 부실 가능성을 우려하며, 대출규제를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놨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만 집착하며 이런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10일 내놓은 ‘11월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달 말 국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모기지론 양도분 포함)은 554조2951억원으로 한달 전에 견줘 6조8670억원 늘었다. 은행 가계대출은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와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진 지난 8월부터 증가 폭을 키워 넉달 동안 무려 22조786억원이 늘었다. 대출규제 완화 이전인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늘어난 가계대출은 8조6024억원에 그친다. 한달 평균 증가액은 규제 완화 이전 1조2289억원에서 완화 이후 5조5196억원으로 다섯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 중 은행 주택담보대출(집단대출·전세대출 포함) 잔액은 한달 새 5조8728억원이 증가한 400조7161억원을 기록해 사상 처음 4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지난 8월 부동산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엘티브이와 디티아이 규제 완화를 시행했다. ‘부동산 한겨울론’을 내세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를 주도했다.
하지만 가계부채의 가파른 증가세가 이어지자, 규제완화 시행 넉달 만에 정부의 대출규제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른데다, 정부가 의도했던 주택 구입 목적보다는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으로 쓰기 위한 추가 대출이 상대적으로 더 늘어나는 모습까지 포착됐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날 ‘내년 경제전망 및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가계의 미래 소득도 감안해서 디티아이의 산정 방식을 강화하는 등 가계부채 부실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조동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재 60%인 디티아이 비율이 조금 높다는 인식이 있다”고 언급했다. 향후 디티아이 비율의 적정성을 두고 적잖은 논란이 벌어질 수 있는 발언이다. 애초 규제완화가 이루어질 때부터 디티아이는 부동산 경기 조절을 위해 구사할 성질의 규제가 아니라는 반대론이 팽배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제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의뢰로 작성한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수준 및 해외 비교’ 보고서에서 “현재의 높은 가계부채 수준이 발생시키는 여러 위험요인을 감안할 때 향후 소비자금융정책은 가계부채의 접근성 제고에서 벗어나 가계의 자산 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디티아이와 엘티브이 규제 강화와 이자율 수준의 정상화를 통해 가계부채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기관인 금융감독원에서도 가계부채가 더 가파르게 늘어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좀더 지켜보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핵심 관계자는 “(대출규제 완화 뒤) 부동산 거래량이 늘어나고 가격은 급등하지 않는 등 안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아직은 정책 우선순위를 바꿀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대출규제를 다시 죌 경우, 간신히 살려놓은 부동산 경기를 다시 꺼뜨릴 수 있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부채 급증에 대해서도 “(대출규제 완화와 함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도 내린 걸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소득을 늘려 부채 부담을 줄이는 정책은 이어가더라도 부채 총량을 줄이는 정책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규제 정책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여러가지 (위험)변수를 모니터링하고 있고 실무선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면서도 “내년 경제정책 전반의 윤곽이 나온 이후에 거론될 문제”라고 말했다.
황보연 김수헌 기자, 세종/김경락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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