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내 아이 얼굴 사진이 ‘소외계층’이란 이름표를 달고 뉴스에 나온다면 기분이 어떨까?
최근 한화그룹이 자체 사회공헌 사업의 성과를 홍보하면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한화그룹은 지난달 30일 이른바 ‘소외계층’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한화예술 더하기’ 프로그램의 운영성과를 발표하는 보도자료를 뿌렸다. 이 프로그램은 한화그룹이 한국메세나협회와 손잡고 저소득층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한화 임직원들은 자원봉사자로 직접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한화그룹이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는 2012~2014년 3년 동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등학교 3학년 이상 어린이 662명, 한화그룹 임직원 408명을 상대로 진행한 사업 효과 분석이 담겼다. 어린이들의 창의성 지수가 높아졌으며, 한화 임직원들도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한화그룹이 이를 홍보하려고 초등학생 또래 아이들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교육 현장 사진들을 함께 공개했다는 점이다. 31일치 일부 종합일간지와 경제신문은 물론 많은 미디어 온라인 뉴스에는 이 아이들 사진이 ‘소외계층 아동 정서지능 향상 기여’, ‘소외층 아이들 창의력 쑥…’ 같은 제목을 달고 실려 있다. 사진 속 아이들 얼굴은 아이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볼 만한 수준으로 찍혀 있다.
한화그룹에 학교생활이나 또래그룹 교우관계 등으로 예민할 나이의 아이들 사진을 이런 식으로 공개해도 되는지 문제를 제기하자 “사진을 찍기 전에 허락을 구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런 사진이 추후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지, 사진노출로 교우관계 등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해 충분한 인지와 판단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아이 부모에게 허락을 구한다 하더라도, 받는 혜택 때문에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이런 사진 노출 요청 자체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사실 한화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최근까지도 씨제이그룹이나 비엔피파리바은행 등 여러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홍보한다면서 아이들에게 ‘낙인효과’로 상처를 줄 가능성이 큰 사진들을 뿌리고, 상당수 언론이 이를 거르지 않고 보도하는 경솔함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점차 강조되면서, 많은 대기업이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해 사회공헌에 인력과 비용을 투입했다. 이를 홍보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해맑게 즐거워 하는 아이들 얼굴을 세련된 카메라 앵글로 잡아낸 사진은 홍보에 최적의 이미지로 비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보육원 앞에 지원용 라면상자를 쌓아놓고 아이들을 줄세워 홍보 사진을 찍던 1970년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행태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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