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실질적 타결 때와 견줘 이번 가서명 협정문에 담긴 내용 중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개성공단 제품이 폭넓게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고, 대상 품목수도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으로선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을 ‘한국산’으로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크게 열려 가격경쟁에서 유리하게 됐다. 우리 정부와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개성공단 역외가공지역(싼 인건비 등을 이용하려고 국내 생산 부품이나 반제품을 가져다 가공해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생산 지역) 지정 협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5일 공개한 한-중 자유무역협정문을 종합하면, 협정 발효와 동시에 개성공단 제품에 대해 원산지 지위를 인정하는 원칙을 세우고 품목수를 310개로 정했다. 품목수는 매년 합의에 따라 개정이 가능하도록 했는데 현재 생산 제품뿐 아니라, 앞으로 생산이 예상되는 품목도 포함돼 있다. 앞서 발효된 한-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자유무역협정의 개성공단 제품 원산지 지위 인정 품목수는 276개, 한-인도는 108개, 한-아세안 및 한-페루는 100개였다.
원산지 요건도 폭넓게 인정하도록 했다. 앞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에선 최종재 가격 가운데 비원산지투입(비원산지재료+임금+수송비) 비율이 40%를 넘지 않아야 원산지 지위를 인정했는데, 한-중 자유무역협정에선 임금과 수송비는 비원산지투입 항목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우태희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협상 타결 선언 당시와 비교할 때 이번에는 좀더 구체화됐다. 또 개성공단 원산지 지위는 다른 자유무역협정과 비교해 가장 우호적인 결과를 도출해냈다. 역외가공위원회를 만들어 추가 설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의 값싼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되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가격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은 북핵 문제를 이유로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완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미, 한-유럽연합 등 5개 자유무역협정은 역외가공위원회를 통해 추후 결정하기로 해놓은 상태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에 수출하는 제품은 개성공단에서 반제품이나 중간재로만 생산한 뒤 우리나라에서 최종 완성해야 한국산으로 인정된다. 원산지 규정에서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최대치까지만 개성공단에서 가공하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완제품으로 가공해 한국산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한-미, 한-유럽연합 등 자유무역협정 국가와의 개성공단 원산지 협상에 이번 한-중 자유무역협정 조항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측면도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의 개성공단 관련 조항은 당장 우리 쪽에 긍정적 신호로 보이지만, 역으로 중국의 나진·선봉 경제특구의 역외가공지역 원산지 인정 문제와 연결될 수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업체들은 나진·선봉 경제특구에서 북한 인력을 활용해 위탁가공을 하고 있는데 이번 가서명 협정문에 이와 관련된 원산지 조항은 일단 포함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의 나진·선봉 경제특구 위탁가공 원산지 문제는 아직 논의한 바 없지만 논의 근거 규정과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개성공단 이외 역외가공지역에 대한 부분은 향후 위원회를 만들어 협상하기로 했다. 앞으로 지정학적 여건을 봐서 논의가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