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인 우상수씨가 1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서울모터쇼에서 열린 ‘현대차 디자인 포럼’ 무대에 올라 불법 파견 중단을 촉구하는 취지로 시위를 벌이다가 제지를 당하고 있다. 고양/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현장에서
지난 11일, 봄기운이 완연한 전국 곳곳엔 주말 나들이를 나선 시민들로 북적였다. ‘2015 서울모터쇼’ 폐막을 하루 앞두고,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도 관람객 8만6천여명이 줄을 이었다. 이날 오후 현대자동차 전시관 앞 무대에서는 관람객들과 국내외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함께하는 ‘투싼 디자인 포럼’이 예정돼 있었다.
사회자가 행사 진행을 시작하려던 순간, 30대 남자 한 명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겉옷을 허겁지겁 벗었다. 남자가 입은 흰색 티셔츠엔 ‘15년 불법파견 정몽구 구속’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현대차 전시관 한편에선 동조 시위에 나서려 했으나 제지를 당한 남자들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대 위 남자는 곧 진행요원들에 의해 끌려 내려갔고, 소란도 잦아들었다. 이러한 기습 시위를 벌인 남자 세 명은 현대차 울산공장과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우상수(36)·김성봉(42)·김기식(41)씨였다.
올해 2월 대법원은 2000년 8월부터 2003년 6월까지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사내하청 노동자 김기식씨 등에 대해 불법 파견이 맞다고 인정하고, “2002년 8월1일부터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선고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도 우상수·김성봉씨 등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179명에 대해 정규직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러한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법원은 업무 내용이나 정규직·비정규직 혼재 여부 등과 관계없이 사실상 현대차의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현대차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했음은 명확해졌지만,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 2004년 부산지방노동청 울산지청은 현대차와 사내 협력업체 대표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2007년 검찰은 ‘혐의 없음’ 결정을 내린다. 2004년 이후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모두 다섯 차례나 사쪽의 형사 책임을 묻는 고발을 해왔다. 2012년에는 전국 18개 대학 법학과·법학대학원 교수 35명이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불법 파견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몽구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여전히 쓰면서 불법 파견 상황 전면 해소에 나서지 않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기습 시위는 불과 몇 분도 지속되지 못했다. 찰나의 어수선함은 북적이는 모터쇼장의 흥겨움에 묻혀 공기처럼 사라졌다. 대법원 판결문도 바로잡지 못한 ‘불법’적 현실에 파견 노동자들이 박람회 잔칫날 외마디 비명 같은 기습 시위에 나섰지만, 울림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셈이다. 이들은 결국 경찰에 인계된 뒤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별다른 충돌 없이 여러 노동자가 함께 올라와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힘들게 싸우다 보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그런 것을 할 여력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동차를 만들었으면서도 난생처음 모터쇼에 와봤다는 김기식씨가 털어놓은 말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박현정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