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부채가 지난달 말 1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말 1000조원을 돌파한 이후, 1년4개월여 만에 100조원 이상 가계 빚이 늘었다. 저금리 기조와 대출규제 완화, 주택거래 증가의 세가지 요인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로 가계 빚이 가파른 속도로 불어난 데 따른 결과다. 정부는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가에 경계감을 나타내면서도, 경기 회복세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가계대출 억제책을 마련하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1분기 가계신용’ 자료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가계부채)은 지난해 12월 말(1087조7천억원)에 견줘 11조6천억원(1.1%) 늘어난 1099조3천억원으로 집계됐다. 가계신용은 가계 빚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통계로,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상환 전 카드 결제 대금과 할부금액)을 더해서 산출한다. 가계신용은 분기별 자료여서 4월 말 통계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지만, 1100조원을 넘어선 게 확실시된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4월 말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한달 전에 견줘 8조8천억원이나 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월간 증가폭은 금감원이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6년 이래 최대치다.
올해 1분기 가계신용의 세부 내용을 보면, 가계대출이 1040조4천억원으로 전기 대비 12조8천억원 늘었다. 이는 2002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1분기 기준으로 최대 증가폭이다. 판매신용은 59조원으로 1조2천억원 줄었다.
금융회사별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은행이 7조8천억원, 저축은행·새마을금고·상호금융·신협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이 1조5천억원, 보험사·증권사·대부업체를 포함하는 기타 금융기관이 3조5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특히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9조7천억원 늘어,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1분기 2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2분기 7조4천억원, 3분기 11조9천억원, 4분기 15조4천억원으로 증가폭이 가파르게 커졌다. 반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 주택담보대출은 4천억원 감소했다. 대신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은 기타 대출이 1조9천억원 늘었다.
가계신용이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크게 늘어난 것은 한은의 세차례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사상 최저 수준의 대출금리와 정부의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주택 매입 수요 증가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 인하, 주택대출 규제 완화, 주택경기 부양 정책으로 그동안 억제됐던 대출 수요가 살아나면서 가계부채 총량이 너무 많이 늘었다”며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출 규제책 마련에 나서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정책 대응 방향을 놓고는 고심을 하고 있다. 현재의 가계부채 급증이 집값 급등을 동반하지 않고 있어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는데다, 자칫 대출 규제 카드를 꺼냈다가는 부동산을 비롯한 전반적인 실물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3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등의 국장급 이상 간부가 참여하는 가계부채관리협의체를 꾸려 수차례 회의를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손병두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가계부채 진단과 대책 마련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라며 “오는 7월 말로 종료되는 엘티브이·디티아이 규제완화 조처를 연장할지 여부도 논의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김수헌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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