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수주 가뭄을 겪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이 구조조정 고삐를 죄는 가운데, 고용 불안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특히 조선업 전체 고용에서 60%를 차지하는 사내하청 고용은 하루아침에 회사 폐업과 함께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태마저 벌어진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은 올해 들어 사무직 직원 1300여명을 퇴직시킨 뒤 지난 1일에야 인력감축 중단을 선언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공개한 이 회사 자료를 보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지난해 12월 말 4만1059명에서 올해 4월 말 3만8986명으로 2천여명이나 줄었다. 인력 감축은 사내하청 회사가 갑작스레 폐업을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지난 4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하남산업과 백운이엔지는 월급을 주기로 한 날에 200여명의 직원에게 폐업을 통보했다. 이후 고용 승계는 이루어졌지만, 3월 한달 내내 일한 임금과 퇴직금 일부를 여전히 받지 못한 상태다.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미포조선의 하청업체 케이티케이(KTK)선박도 지난 3월에 임금도 제대로 안 주고 폐업을 통보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이러한 ‘먹튀 폐업’ 사태가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업체에 매달 지급하는 업무비인 기성금을 삭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업계 관계자는 “사내하청 고용 불안의 원인은 결국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며 “하청업체 업주는 원청에서 주는 돈이 줄어들면 사업을 접어버린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폐업한 하청업체에 이미 기성금을 지급한 터라 임금 체납 문제를 책임지기 어렵다고 한다. 현재는 부실 기업을 골라 낸다며 하청업체 점검에 나선 상황으로, 일부 업체에 대해선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런 처지에 몰린 조선업계 사내하청 노동자는 11만여명에 이른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산업협회 자료를 보면, 2013년말 기준으로 18만3천여명의 조선업 종사자 가운데 62%인 11만4천여명이 사내하청 노동자로 고용됐다. 전체 고용은 2008년에서 2013년 사이에 3만1천여명 늘었지만 사내하청 증가가 거의 대부분인 3만여명을 차지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실업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조선소가 몰린 경상남도도 울산과 상황은 비슷하다. 경남 제조업 전체에서 조선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액의 23.5%, 수출액의 44%에 이른다.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신상기 대표는 “사내하청 업체 폐업 뒤 고용 승계가 이뤄진다 해도 조건이 악화하는 추세”라며 “거제에는 조선업 사내외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1만명가량의 이주노동자가 있는데 임금 체납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전했다.
중국 조선업체들의 부상으로 한국 조선 산업이 과거의 호황을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노사정이 함께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박종식 전문연구원은 “중소형 조선사 대부분이 사라진 현재, 일터에서 밀려날 경우 옮겨갈 곳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일본처럼 조선업의 핵심인 숙련 노동자들이 사라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대형 조선사와 중소 조선사가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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