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이사와 딸 유지민양. 이베이코리아 제공
모든 것은 지하철 고속터미널역에서 시작됐다.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커뮤니케이션부문 이사(43)는 딸 지민(10)이가 유치원 들어갈 무렵, 아이를 데리고 7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찾아간 휠체어 리프트 옆에서 ‘수리중’ 표시와 함께 이런 안내문을 봤다. “7호선 환승은 9호선 동작역→4호선 이수역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스무 계단 남짓, 걸어서는 20초도 안 걸릴 시간이었다. 그러나 엄마 뱃속에서 소아암을 지니고 나와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지민이에게는 너무 먼 여정이었다.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를 40분 걸려 돌아가라니 너무 화가 나서 사무실로 전화했어요. 그랬더니 계단 아래면 7호선을 관리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로, 위에 있으면 3호선 서울메트로로 연락하라는 답변을 받았죠.”
홍 이사는 그때부터 장애인 이동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게 됐고 제도적 해결 못지않게 장애인 또는 가족들의 정보 공유가 절실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19일 옥션이 국내 오픈마켓 최초로 내놓은 장애용품 전문 쇼핑관 ‘케어플러스’는 홍 이사의 분투가 만들어낸 결실이다. “저 같은 장애인 가족들은 궁금한 게 많아요. 휠체어는 어떤 게 좋은지, 휠체어 액세서리는 어떤 게 필요한지, 배변장애용 보조용품들은 어디서 사면 좀 싼지…. 병원을 통해서나 알음알음으로 정보를 얻다 보니 늘 부족하고 돈도 많이 들죠.” 정보 불평등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사내 아이디어 공모에 넣었지만 탈락했다. 버려진 아이디어를 들고 직접 관련 부서를 찾아다녔다. 아홉 곳에서 들은 대답은 “아이디어는 좋아요”까지였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장애인만 250만명, 후유증에 시달리는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과 가족들을 합하면 천만명 가까이 장애인 가족인 셈인데 왜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할까, 답답했다.
올 봄에 리빙·레저 부문에서 반창고 등 슈퍼용 의약품을 파는 의료용품 코너를 만들어 대박이 나면서 홍 이사는 서랍 속 아이디어를 다시 꺼냈다. “담당자의 오케이 사인을 받고서 포커스그룹 인터뷰도 하고 척수장애인협회 도움으로 실수요자 조사를 통해 10여개의 장애용품 상품군을 선정했어요. 우선은 보행 장애인을 위한 제품들이 주를 이루지만 점차 장애유형별로 다양하게 제품군을 늘려갈 계획입니다.”
장애용품 전문 스타트업 기업과 상생의 실천에도 나섰다. 휠체어 사용자가 게임용 조이스틱처럼 이용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휠체어 전동 키트를 제작하는 토도웍스의 제품들을 오픈마켓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장애인 이동권 프로젝트로 스토리 펀딩에 나선 지민이가 이 기업의 테스트 드라이버를 했던 게 인연이 됐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보통’ 워킹맘보다 열 배는 더 고된 장애아 워킹맘이지만 장애용품 전문관을 열면서 직장을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태어나자마자 6개월을 아이 항암치료로 병원에서 지내며 당연히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했죠. 그런데 회사로부터 좀 더 버텨보라고 휴직을 지원 받고, 남편은 회사의 1호 아빠 육아휴직자가 되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홍 이사는 ‘케어플러스’ 활성화와 함께, 프로젝트 때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만든 협동조합 ‘무의’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 인식 개선 캠페인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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