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철 한수원 노조 한울본부장(가운데)이 지난 3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한수원새울본부 옆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결의대회’에 참석해 고민에 빠져 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지금이야말로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때에요.”
환경단체 활동가 말이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자 최남철(48)씨 말이다. 그는 1991년에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했고 2001년에 한수원으로 옮겨 핵발전소의 두뇌와 신경망에 해당하는 계측제어 시스템을 다루는 일을 해왔다. 2013년부터는 한수원 노조 한울본부위원장도 맡고 있다.
한수원 노조는 최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활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정부의 탈핵 정책에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한수원 노동자들이 같은 태도는 아니다. 노조에서도 “탈원전은 자연스럽고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최남철 본부장도 그 중 하나다. 그를 지난 3일 울산 새울원자력본부 인근에서 만났다.
최 본부장은 “한수원 노동자들이 ‘탈원전은 무조건 안 된다’는 논리에 갇혀선 안 된다”며 “공익의 관점에서 큰 틀의 에너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쉽게도 한수원 안에서는 탈원전 논의를 금기시해 왔다”며 “탈원전을 말하는 건 자기 직업을 부정하는 거란 시선이 강하다. 그러나 원자력이 인류의 영원한 에너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한수원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탈원전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26년 전 한전에 입사해 원자력 이론을 배우며 원자력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최 본부장은 “인간의 기술력에 감탄했다”며 “참 신기하고 신선했다. 그땐 신이 나서 가족·친구들에게 원자력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참사는 ‘확률적 안전 밖의 영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안전을 계산한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 만든 것을 일깨워줬다. 확률적 안전 밖 영역의 대표적 예는 자연재해다. 한국 원전은 지진 규모 7.0을 기준으로 내진 설계됐다. 한반도에서 7.0 이상의 지진이 거의 없었다는 통계가 근거가 됐다. 그러나 7.0 이상 지진 발생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횟집에서 밥을 먹다가 바닷물이 원전 쪽으로 밀려들어오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봤어요. 얼마 후엔 1호기가 폭발했더라고요. 순간 ‘그게 왜 터지지? 터질 수가 없는데. 불가능한데'라고 생각했어요.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생기니, 모든 것이 가능하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에너지는 삶의 필수자원이다. 그러나 환경·안전 관리 비용이 상당한 핵발전소를 확대해 온 지난 역사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 본부장은 “원전은 자본주의와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며 “인간의 욕망을 다 채우자고 원전을 100기씩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에너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수원 노조와 고리 핵발전소 인근 일부 지역주민 등이 3일 한수원 새울본부 옆 공터에서 집회를 열고 ‘대책 없는 탈원전 정책 즉각 폐기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최 본부장은 내부에서 원전의 안전, 일자리 보장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하는 것이 원전 안전을 높이는 것은 물론 노동자 생존권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원전 확대를 외치며 설비는 잔뜩 늘렸지만 인력을 그만큼 늘리지는 않았다. 각 파트(부서) 인력은 오히려 줄었다. 원전 안전에도 좋지 않은 일이다. 정부 정책으로 향후 원전 몇기가 사라진다면, 그로 인해 생기는 여유인력은 사람이 부족한 곳에 재배치해야 한다. 원전 안전성도 더 키울 수 있는 길이다.”
다만, 정부의 ‘속도전’에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공사가 이미 시작된 신고리 5·6호기를 이렇게 당장 중단하는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공론화위 3개월도 너무 짧다”며 “그러나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사용 주체인 시민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큰 방향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최 본부장은 지난달 한수원 노조 회의에서 이런 의견을 냈다. 그와 가까운 한 동료는 “회사도 괴롭히고 노조도 따돌린다”고 했다. 그러나 최씨는 꿋꿋하다. 그는 “저는 노조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한수원 노조는 반대로 가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한수원 안에서도 탈원전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때”라고 말했다.
울산/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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