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말을 아꼈다. 이 부회장은 당장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않고 당분간 거리를 유지하면서 3심 재판 준비와 그룹 신뢰 회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5일 오후 삼성은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되자 “공식 입장을 낼지 결정되지 않았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무죄는 아니더라도 혐의 상당 부분이 줄어들어 다행”이라며 “회사에 덧씌워진 비리 이미지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일부 뇌물 공여 혐의가 여전히 유죄로 인정됐지만, 재판부가 인정한 범죄 혐의가 크게 줄었다.
수감 중 주요 사안을 보고받는 등 ‘옥중경영’을 해온 이 부회장은 당분간 3심 재판 준비에 집중하면서 경영 복귀 시점을 저울질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현재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비자금 사건이 터진 직후 2008년 4월 경영 현장에서 물러났다가 형이 확정된 뒤인 2010년 3월 ‘그룹 사장단의 복귀 요구’라는 형식을 빌어 복귀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경우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는 지난해 12월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있게 삼성을 만들고 싶었고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와 달리 오히려 추락한 기업과 본인의 이미지를 끌어올려야만 한다.
또 지난해 53조원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사상 최대 성과를 낸 삼성전자의 실적을 더욱 개선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슈퍼 호황을 타고 최고 실적을 지속할 지 여부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가 관건이다. 또 2016년 11월 자동차 전자장치 분야 업체인 하만을 인수한 이후 끊긴 대형 인수합병(M&A)을 재개하고, 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나 이건희 회장 비자금의 사회환원 약속 등도 경영 복귀와 상관없이 이 부회장이 결단해야 할 숙제다.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재벌의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지만, 5대 그룹 가운데 삼성만이 아직 개편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또 보험업법 개정과 금융위의 통합감독제 도입 등에 따라 출자구조 조정 등도 필요하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드러난 이건희 회장 비자금의 사회환원 약속 역시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말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이건희 회장의 수조원대 비자금의 사회환원 약속에 대해 “가족들과 상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