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집행유예로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달 째 공개 행보를 하지 않고 있다. 집행유예에 대한 여론이 나쁘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삼성의 뇌물 의혹이 새로 드러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아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출소 직후 “아버지를 뵈러 병원에 간” 일정 외에 공개 행보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3일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와 화성 반도체 공장 기공식 등에 참석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이 부회장은 지난달 이사회 직후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회장)과 점심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홍보팀이 “출근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잠행 중이다. 그가 과거 수행 직원 없이 돌아다닐 정도로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최근에도 수행 직원 1명만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좋지 않다. 최근 삼성그룹은 실제 주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의심되는 다스의 해외 소송비용 수십억원을 대납한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 중이다.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에 대한 여론도 ‘가벼운 형량’이라는 의견이 56.5%(한길리서치)에 이르는 등 부정적이다. 지난달 중순 최순실씨에게 20년형을 선고한 최씨 재판부가 삼성이 최씨에 건넨 뇌물 액수를 이 부회장 2심(36억) 때의 두 배인 73억원으로 판단하는 등 3심 전망도 밝지 않다. 이 부회장은 최근 차한성 전 대법관을 3심 변호인단에 선임하는 등 3심 재판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5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연말·연초 물갈이 인사로, 삼성 계열사에 이른바 ‘이재용 전열’을 마련해 놓은 것도 그가 공개 행보를 늦출 수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 사람으로 꼽히는 최지성 삼성전자 회장 등이 미래전략실 해체와 법정 구속 등으로 자연스럽게 물러난데 이어 주요 계열사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60대의 권오현, 윤부근, 신종균 등 3대 부문장을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등 50대 사장으로 교체했다. 또 최치훈 전 삼성물산 사장이나 김창수 전 삼성생명 사장, 윤용암 전 삼성증권 사장 등도 2선 후퇴했다.
대신 그룹의 옛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역할을 하는 태스크포스(TF)도 새로 꾸려, 미전실 출신 인사들을 배치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정현호 전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사장)이 맡았고,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삼성생명 ‘금융경쟁력제고TF’는 미전실 출신 유호석 삼성생명 전무가 팀장을 맡았다. 비전자 계열사를 총괄하는 삼성물산 ‘EPC 경쟁력강화TF’도 미전실 출신 김명수 삼성엔지니어링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이 맡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50대의 미전실 출신 임원들로 미니 미전실을 만들어, 새 이재용 체제를 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복귀가 오는 23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이뤄질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출소한 지 50일 가까이 되는데다, 새 이사진이 첫 선을 보이는 자리여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참석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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