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평균가동률을 보면 2차 석유파동과 노동자 대투쟁 시절 수준의 불황이다.” (오정근 전 건국대 교수)
최근 경기침체·불황론의 주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로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설비투자 확대 등 긍정적 경제활동의 결과로도 하락할 수 있어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장들을 얼마나 돌리고 있는지(제조업체의 생산설비 이용도)를 나타내는 제조업 가동률은 2010년 이후 꾸준히 하락해 올해 3월에는 70.3%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2009년 3월·69.9%)에 근접한 수준이다.
산업연구원은 10일 ‘제조업 가동률 장기 하락의 원인’(민성환·강두용·이진면) 보고서를 내어 “제조업 가동률 장기 하락은 글로벌 금융위기 뒤 교역 부진 등으로 제조업 성장세가 크게 둔화한 가운데, 저금리 기조로 (설비) 투자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수출 주도형인 한국경제는 세계 교역 규모가 줄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투자 호조와 구조조정이 겹쳐 제조업 가동률이 낮아졌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대표적인 호황산업인 반도체의 경우 2011~2018년 1분기 사이 생산량(생산지수)은 114.6% 증가했는데, 생산능력(생산능력지수)은 106.4% 증가해 가동률지수는 -2.3%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가동률이 상승했던 2001~2007년 반도체는 생산량(494.7%)이 생산능력(297.1%)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가동률지수가 28% 상승했다. 결국, 호황산업의 경우 설비투자가 생산량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 2000년대와 달리 2010년대에는 기업들이 미리 설비를 확대한 게 가동률 하락에 힘을 보탰다는 얘기다.
또 구조조정 지연과 한계기업이 늘어난 점도 제조업 가동률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실제 제조업에서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영업이익이 이자비용보다 적은)인 한계기업 비중은 2010년대 들어 2011년 7.1%, 2012년 7.3%, 2013년 8.8%, 2014년 9.4%, 2015년 9.3%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또 “가동률 산정에 필요한 생산능력의 대표 품목과 대상 사업체 범위, 생산 개념 등이 생산지수와 다소 차이가 있”고 “생산실적 피크 적용 기간이 대부분 2년 이지만 일부 주요 품목들은 기간이 없어 생산능력이 과대 추정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 지표들이 얼마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사례로 생산실적 피크 산정기간이 2년인데 반도체 일부 품목들은 생산이 빠르게 늘어나 피크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철강·선박은 과거 최고치 실적이 생산능력으로 계산된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비중이 높아진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도 대표 품목의 수명과 주기가 매우 짧아 통계가 실제 대표 품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엔 가동률이 과소 추정될 수 있는 점도 지적됐다.
민성환 연구위원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교역 부진과 (호황산업에서의 설비 확충과 불황 산업의 구조조정 지연을 가능케 한) 초저금리 지속이 가동률 하락의 주원인으로 보인다”며 “최근의 글로벌 경기 회복과 금리상승 추세가 향후 가동률 하락세의 반전을 가져올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