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위스테이 견본주택 개소식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림으로 발표하는 입주 예정 어린이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한 해에 지어지는 집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 많은 집을 짓고 견본주택를 만드는 데 장관이 올 일은 위스테이 말고는 아마 없을 겁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위스테이’ 견본주택 개관식에 참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다. 위스테이는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이다. 뉴스테이로 대표되는 공공임대주택 사업에 공공성을 더한 모델로, 극심한 수준에 이른 주거문제를 풀어낼 대안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일반 건설사가 아니라 사회적기업이 건설부터 운영까지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국토교통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더함’이 주택토지기금과 3대 7 비율로 리츠를 만들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토지를 매입함으로써 사업이 시작됐고, 입주민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출자와 공공주택 운영에도 참여하도록 했다. 지난 3월 착공하고 2019년 9월 입주 예정인 경기 남양주시 별내지구 외에, 올 하반기 착공해 2020년 입주 예정인 경기 고양시 지축지구 등 두 군데가 위스테이 예정지다. 별내 491세대, 지축 539세대 등 약 1300세대가 입주할 수 있다.
건설사가 이익 대부분 가져가는 ‘뉴스테이’
뉴스테이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임에도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임대료가 시세와 비슷할 뿐 아니라 여전히 건설사가 이익 대부분을 가져가고, 의무 임대 기간 이후 안정적 주거가 불확실하다는 점 때문이다. 김현미 장관도 지난해 “뉴스테이의 공공성 부족을 해소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위스테이의 의미는 사회적기업이 건설하고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방식으로 뉴스테이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는 데 있다. 우선 임대료를 필요 이상으로 올릴 필요가 없다. 수익 추구가 아니라 공공성 있는 주거 모델을 만드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 사회적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실제 위스테이의 임대료는 시세에 비해 20∼30%가량 저렴하다. 24평형의 경우, 보증금을 최대로(현재 계획상 1억6800만원 정도) 올리면 월세 10만원에 거주할 수 있다. 게다가 임대인은 단지 집을 빌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영 협동조합에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으로도 참여하기 때문에 의무 임대 기간인 8년 후에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집을 빌리는 사람이면서 빌려주는 주인이 되기도 하는 것.’ 위스테이가 추구하는 주거 모델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더함의 양동수 대표는 “월세로 살면 떠돌이로 서럽게 살아야 하고, 집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턴 내 재산만 지키면 된다는 주거와 소유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위스테이 견본주택 개관식에 참여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양동수 더함 대표. 더함 제공
공동체 활동, 지역사회 참여까지…더 넓어진 공공성
단지 낮은 임대료만이 위스테이가 추구하는 공공성의 전부는 아니다. 위스테이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을 만들고,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기여하는 모델을 그렸다. 실제로 커뮤니티 하우스, 공동육아, 의료생협 등이 위스테이 단지 구상에 포함돼 있고, 일부 공간은 소셜벤처를 키우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지난달 28일 문을 연 견본주택도 전시기간이 끝난 뒤엔 소셜벤처와 시민들의 모임에 대여하는 서울 속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일 예정이다.
입주 희망자들 역시 이같은 점을 높이 산다. 실제 입주를 결정한 조합원들은 낮은 임대료 뿐 아니라 공동육아, 커뮤니티 활동과 같은 공동체성이 매력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입주를 앞둔 조합원 모임 중 가장 활발히 운영되는 것도 공동육아 모임이다. 이날 다섯 살 아들 도율 군의 손을 잡고 견본주택 개소식에 참여한 김기태·최성화씨 부부는 “요즘 아이들은 따뜻한 이웃이라는 걸 경험하기 힘든 환경에서 사는데 아이를 공동체 속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며 “성미산과 같은 모델을 알고는 있었는데 아파트에 살면서도 공동체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처럼 분리된 공간에서 지내되 연결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주로 입주를 희망하고 있다. 운영을 맡은 위스테이 별내 사회적협동조합의 손병기 이사장은 “입주 조합원 모임에서 공동체 살이를 공부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며 “공동육아를 하겠다는 것도 주민들이 논의해 결정했고, 커뮤니티센터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 층간소음 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할지도 논의한다”고 말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입주민들끼리 안건을 논의하고, 원하는 사람들은 소모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입주민끼리만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양주나 고양 등 해당지역에 보탬이 되기 위한 구상도 진행 중이다. 별내에는 이미 1000평 정도의 땅을 사들여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 비즈니스를 꾸리고, 위스테이 내부에 소셜벤처를 위한 공간도 만들 계획이다.
위스테이에서 계획중인 커뮤니티 활동들. 위스테이 안내자료 갈무리
시민사회도 관심…“위스테이 모델 서울에도 확산 필요”
역설적이게도 별내와 지축 지구 모두 지난 박근혜 정권 때 사업 허가를 따낸 경우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무주택자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 20만호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건설사가 주도하고 이익을 대부분 가져가는 구조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며 지역사회 기여까지 공공임대주택의 역할로 보는 위스테이 모델에 시민사회도 차츰 주목하고 있다.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주거가 안정적일 뿐 아니라 내가 낸 임대료가 지역을 위한 일자리로 돌아오는 위스테이 모델을 서울에도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위스테이는 입주민의 30%가량을 시민사회, 사회적경제 등 공동체 모델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을 입주민으로 우선 모집했다. 양동수 대표는 “낮은 임대료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욕구가 있는 시민들이 위스테이에 호응하고 있다”며 “일반 시민들도 공동육아,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 사생활을 보장받되 지역사회와 느슨하게 연결된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개관식에 참여한 조합원 신민정씨는 “지금은 서울 성북구 주택에 살고 있는데, 아파트 생활은 고려하지 않다가 위스테이의 공동체 생활에 끌려 입주를 결정했다”면서 “임대료나 위치 때문에 들어온 분도 있을 것이고 함께 하는 생활을 꿈꾸는 분도 있을 텐데, ‘느슨한 공동체’를 통해 잘 어우러져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