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래픽 정희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저녁(한국 시각) 예정인 ‘인도 만남’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이자 대기업 정책의 변화를 시사하는 상징적인 이벤트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동안 ‘로우키’로 움직였던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은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을 계기로 이뤄졌다.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인도 노이다 공장을 두 배 규모로 증축하는 현장에서 문 대통령은 국가 원수,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총수 자격으로 만난다. 이번 준공식에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참석한다. 약 30여분의 준공식 행사 동안 이 부회장이 문 대통령과 모디 총리를 안내할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정부의 대기업 정책 기조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그동안 불·탈법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제인과 분명하게 거리 두기를 해왔던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 세력에 뇌물을 준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는 사실 자체가 큰 변화라는 것이다.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인도 뉴델리에 도착 후 첫 일정으로 힌두교를 대표하는 성지인 '악샤르담 힌두사원'을 방문, 환영나온 교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6월 미국 방문, 11월 인도네시아 방문, 12월 중국 방문 등 때 재판을 받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제인들을 경제사절단에서 제외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 방미 때는 경제사절단 52명이 동행했지만 재판을 받던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해 부영·포스코·케이티(KT) 등의 총수나 경영진은 제외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과 연관됐거나 ‘갑질’ 의혹 등이 제기된 그룹의 총수 등을 모두 제외한 것이다. 11월 문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 때는 권오준 당시 포스코 회장의 동행이 추진되다가 불발됐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서 300만t 규모의 해외 첫 일관제철소를 가동하는 등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 중 투자 규모가 가장 컸지만, 청와대가 권 당시 회장의 동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당시 회장은 직접 수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포스코 자체가 최순실 사태에 깊숙이 연관돼 있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의 대기업 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득주도 성장이 실물경제에서 잘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5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정부가 경기 회복이나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과 함께 하겠다는 신호를 주는 것 같다. 특히 뇌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 부회장과의 만남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친기업 행보로 전환했다’는 해석이 재계의 과도한 분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친기업적 행보를 원하는 기업의 바람이 이번 ’문 대통령-이 부회장의 만남’에 대한 해석에 지나치게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왜 (이 부회장이) 오면 안 되는 것인가. 지금까지 대통령 경제 행사에 누구는 오고 누구는 오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며 “그렇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퀘스천(의문)”이라고 말했다.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8일 오후 인도 뉴델리에 도착 후 첫 일정으로 힌두교를 대표하는 성지인 '악샤르담 힌두사원'을 방문, 힌두교 지도자 동상 위에 물을 붓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만남을 계기로 정부와 삼성 간 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그만큼 이 부회장의 활동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현재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세 차례 해외에 나가서도 비즈니스 미팅 등 비공개 일정만 진행했다. 이번이 이 부회장의 첫 공개 행보인 셈인데,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과 만난다. 이번 만남을 먼저 제안한 주체가 확인되지 않지만, 정부와 삼성 쪽의 상당한 소통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양쪽 모두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6일 청와대 정례브리핑에서 “청와대가 이 부회장을 초청한 것은 아니다. 이 부회장은 일반적으로 (기업이) 해외 투자를 하면서 (현지에) 공장 준공식을 할 때 참석하는 인사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만남이라는 것이다. 삼성의 한 임원도 “행사 자체만 놓고 보면 해외 공장 준공식에서 주인이 손님을 맞는 모양새”라며 자연스러운 만남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현시점에서 정부와 삼성의 만남은 어떤 식이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재계에서는 필요하다는 반응이지만,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좋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만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다. 이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남은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 분야에서도 불·탈법에 단호히 대응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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