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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같은 고민 나누니 농촌에서 계속 살아갈 힘 생기던데요”

등록 2018-07-18 17:49수정 2018-07-19 09:44

[더 나은 사회]
농촌청년여성캠프 연 해원과 들
농촌 2030 여성들 살아가는 이야기
일상의 고민 나누는 느슨한 ‘연대’
“내 고민 말하니 사회로 연결되더라”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 모습. 4회차 테마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 모습. 4회차 테마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만나서 자기 이야기 해요. 내 역사, 상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거창한 얘기는 안 해도 ‘내 잘못이 아니구나’, ‘나만 겪는 게 아니구나’, 정말 큰 위로가 돼요.”

지난해 3월부터 충남 홍성에서 ‘농촌청년여성캠프’(캠프)를 네 차례나 연 노해원(해원·29) 박푸른들(들·30)씨. 두 사람의 목소리가 꽤나 밝다. 두 사람이 캠프를 열게 된 계기가 뭐냐고 묻자, “모여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좋아서”란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젊은 농민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자연스레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쪽에 의견이 모아졌다. 아예 1박2일 만나기로 했다. 모임이 두 번 정도 진행될 즈음 ‘농민’이라서보다 ‘농촌에 사는 젊은 여성’이라 겪는 고민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농민은 아니지만 농촌에 사는데 참여하고 싶어요’ ‘귀농을 꿈꾸는 젊은 여성인데 받아주세요’…. 모임 횟수가 늘어날수록 문의가 빗발쳤다. 농촌에 살거나 진지하게 농촌살이를 계획하는 젊은 여성으로 대상이 넓어진 이유다.

농촌청년여성캠프를 기획한 해원(왼쪽)과 셋째 아이 우리, 들(오른쪽).
농촌청년여성캠프를 기획한 해원(왼쪽)과 셋째 아이 우리, 들(오른쪽).
농촌에 사는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하나로 뭉뚱그려 말하긴 어렵다. 캠프 기획자인 해원과 들 두 사람만 봐도 그렇다. 해원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벌써 남자아이 셋을 키우는 8년차 주부다. 들은 시민단체에서 3년 일을 한 뒤 고향인 홍성에 돌아와 가족과 살며 농사짓는 비혼 여성이다. 가족과 살거나 혼자 살거나, 기혼·비혼, 농부, 공방 운영 등 다른 참가자들도 각양각색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레 이야기는 ‘젊은 여자로 농촌에서 살기’로 이어진다. 사생활이나 옷차림 간섭, 시골집에 혼자 살며 느끼는 두려움은 물론이고, 스스로 뭘 해보려고 해도 “여자가 무슨… 그냥 내가 해줄게” 식으로 동네 사람들이 보이는 친절과 무례함 사이에서 지내기 등 이야기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내 이름’보다는 ‘누구의 딸’ 혹은 ‘누구의 아내’로 받아들여지는 데서 오는 불편함도 있다.

물론 이들이라고 생각이 모두 같을 순 없는 법. “나중에 농촌에 올 또 다른 젊은 여자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항의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지만, “농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젊은 우리가 어느 정도 맞출 필요도 있다”는 온건파도 있다. ‘그냥 만나서 우리 이야기 하자’가 취지인 캠프의 매력이 발산되는 대목은 여기다. 누구나 “나는 그건 동의할 수 없어. 불편해”라며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저마다 자신이 살아온 역사, 가치관을 근거로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상대방 의견도 귀 기울여 듣는다. ‘내 불편함을 내보이되 남의 이야기도 들을 것’ ‘상대방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 캠프가 내건 원칙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3차 캠프 때 누드 드로잉 세션을 열었는데, 한 참가자가 “와! 나 이런 거 너무 불편해!”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단다. 두 기획자의 반응이 의외다. “제일 웃긴 기억이에요. 더는 못 참고 나간 것, 벗고 그림 그리는 거 불편하다고 소리친 것.” 두 사람은 솔직한 자기표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큰 이야기를 하고 커다란 방향을 제시하는 운동도 의미 있겠지만, 이제 젊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한다’, ‘이 길이 맞으니 다 같이 이리로 가라’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지지받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지 않는 스스로를 지키는 거죠. 다른 사회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봐요.”(들) “농촌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한 것 아닐까요?”(해원)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에서의 기획자 해원. 4회차 캠프의 주제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지난 14∼15일 충남 홍성 정다운농장에서 열린 제4회 농촌청년여성캠프에서의 기획자 해원. 4회차 캠프의 주제는 ‘시골 사는 여자 해원,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다’다. 캠프 참가자 박혜정씨 제공
캠프는 규모도 작고 규칙도 헐렁하지만, 그래서 더 끈끈하다. 해원은 셋째 출산 한 달 뒤부터 이번 캠프를 준비했다. “원래는 일정이 안 되는데 한두 번 빠지면 캠프 자체가 없어질까 봐” 꼭 참여한다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은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며 건져낸 이야기를 나누고, 농촌살이를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하며, 다르게 살아도 괜찮음을 증명하겠단다. “진짜 내 고민을 말하니 사회로도 연결되던데요. 나중엔 꼭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초대해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홍성/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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