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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협력이익배분제, 대기업 끌어당길 묘수 나올까

등록 2018-09-09 17:00수정 2018-09-09 17:11

문재인 정부, 대·중기 상생협력 추진
그래픽_김지야
그래픽_김지야
대·중소기업 사이의 상생협력 촉진을 위해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다 포기한 ‘초과이익공유제’가 문재인 정부에서 ‘협력이익배분제’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협력이익배분제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채택한 국정과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9일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현행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에 따라 성과공유제를 7년여째 시행하고 있으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성과공유제에 더해 협력이익배분제를 법제화해 상생협력과 균형발전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며 “여러 차례 당정 협의를 통해, 제도 도입의 근거 조항을 신설한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 정부 입법안을 내지는 않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해당 상임위에서 병합심의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단일안이 도출될 것이고 여기에 정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대-중기, 하도급·위수탁 관계 때
자율합의로 설정한 목표 넘으면
대기업 초과이익을 중기에 배분

MB때 유사 제도 추진하다 포기
대기업 “주주·종업원 이익과 충돌”
중기 이익 대상 ‘성과공유제’만 시행

20대 국회 출범 뒤 협력이익배분제 도입을 위해 발의된 입법안은 모두 4건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과 김경수 전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 등이 대표발의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소기업 관계에서 발생한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배분하도록 촉진한다는 점에서 취지와 목적은 거의 같다. 이호현 중기부 상생협력관은 “대·중소기업이 사전에 자율합의로 설정한 목표이익이나 목표수입을 정해놓고 이를 초과해 달성하면, 역시 사전합의에 따른 비율로 배분하는 게 협력이익배분제의 뼈대이다. 이런 제도를 도입해 확산하자는 취지와 함께 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절차와 세제 혜택 등 여러가지 인센티브 제공 기준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법안이 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협력이익배분제를 도입하는 대·중소기업에 제공할 세제 혜택과 공공조달 시장 참여 우선권 부여 등 구체적인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이미 관계 부처간 협의가 마무리된 만큼 국회 입법 절차만 통과되면 시행령 등 후속법령 정비까지 연내에 마무리해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 통과가 순조로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도입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협력이익배분제는 하도급계약, 위·수탁거래 관계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발생한 대기업의 초과이익 또는 판매수입 증가분을 중소기업과 나누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초과이익 목표치의 설정과 중소기업의 이익 기여도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무엇보다 대기업의 주주 및 종업원의 이해와 충돌한다는 이유 등이 반대여론의 근거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적 반발이 더 크다. 협력이익배분제의 효시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초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할 때 나온 초과이익공유제이다. 국무총리를 지내고 동반성장위를 출범시킨 정운찬 초대 위원장이 “대기업이 초과이익을 내는 것은 대기업의 노력도 있겠지만 중소기업의 노력도 있다. 대기업의 이익을 협력기업까지 공유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대·중소기업간 이익공유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전경련을 중심으로 대기업 쪽의 노골적인 반발이 즉각 일었다. 반발 의견의 압권은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입에서 나왔다. 이 회장은 2011년 3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에 앞서 “이익공유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고 경제학 공부를 계속 했는데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 경제학자이자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논리와 주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투박한 일갈에 힘없이 무너졌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입법 논의조차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한 채 스멀스멀 사라져버렸다. 대신 대기업의 시혜(?)에 의존하는 성과공유제만 도입됐다. 성과공유제와 협력이익배분제는 대·중소기업간에 사전 자율합의로 상생협력의 결과물을 공유한다는 취지는 같다. 사전에 대·중소기업간 자율적 합의와 계약에 따라 시행 여부를 결정하고, 정부는 제도 도입과 확산을 위해 대·중소기업 모두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만 제공한다는 운영 원리도 동일하다. 다만 공유대상의 범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성과공유제는 대·중소기업(위·수탁기업)의 협력에서 발생한 ‘중소기업의 성과’를 대기업도 공유하는 것이지만, 협력이익배분제는 중소기업과의 위탁거래에 발생한 ‘대기업의 이익’을 해당 중소기업과 함께 나눈다는 개념이다.

도입 위한 입법안 4건 국회 계류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협의 완료
정부 “통과되면 내년 본격 시행”

중기 “양극화 심화 속 반드시 필요”
대기업 “정보 유출에 시장도 헤쳐”
정부 “중기혁신 유도 땐 윈윈효과”

성과공유제는, 비록 초기에는 논란이 많았으나 시행 7년째를 맞으며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성과공유제에 참여한 대기업(공기업, 1차 중견기업 포함) 수가 2012년 77개에서 올해 8월 말 현재 320개(누적기준)로 급증했다. 수탁 중소기업 수도 같은 기간 566개에서 6317개로 크게 늘어났다. 이호현 상생협력관은 “제도 도입의 취지와 운영 방식은 거의 같은데 성과공유제는 괜찮고 협력이익배분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협력이익배분제가 성과공유제보다 중소기업에 주는 실익이 훨씬 클 것으로 본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매출 및 이익의 격차 심화는 임극격차와 혁신능력의 격차 심화로 이어져, 결국 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목표설정 프로그램만 잘 마련된다면 협업을 통해 거둔 대기업의 이익을 나누는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협력이익배분제를 도입하면 기업의 원가구조 등 재무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크고 시장경제 질서를 해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중기부 쪽은 “민간기업에 대한 강제성 없이 철저하게 시장경제 원리에 맞도록 협력이익배분제의 법제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낸 바 있다. 이 협력관은 “이미 국내외 주요 대기업에서는 사업 단위, 프로젝트 단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율적 평가에 의해 협력업체와 이익을 나누는 사례가 많다”며 “이익공유를 통해 협력 중소기업의 혁신노력을 유도하면 대기업에게도 제품 향상과 경쟁력 강화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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