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충북 괴산군에 문을 연 괴산자연드림파크 전경. 아이쿱생협과 충북 괴산군이 투자협약을 체결한 지 11년 만에 조성이 끝났다. 아이쿱생협 제공
100만㎡(약 30만평) 넓이의 땅은 생산공장과 물류센터, 연구시설과 숙박시설은 물론 각종 문화시설로 빼곡했다. 영화관과 레스토랑, 카페도 눈에 띄었다. 별천지인 이곳은 충북 괴산군에 들어선 ‘괴산자연드림파크’다.
지난 3일 문을 연 괴산자연드림파크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이 조성한 ‘친환경 유기식품 클러스터’(이하 클러스터)다. 2007년 아이쿱과 괴산군이 투자협약을 체결한 지 11년 만에 거둔 성과다. 괴산자연드림파크 조성에 지금까지 들어간 투자금만 1644억원. 현재 46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아이쿱 측은 2022년까지 지역 일자리 1300개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2014년 전남 구례의 130만㎡(약 40만평) 면적의 땅에 들어선 구례자연드림파크에 이어 괴산자연드림파크가 문을 열면서, 올해로 창립 스무돌을 맞은 아이쿱은 한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때맞춰 이곳에선 지난 2~3일 이틀간 ‘협동조합과 네트워크 생태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전시, 기념식 등 여러 행사가 열려 아이쿱의 스무살 생일을 함께 축하하는 시간도 보냈다. 이 자리에서 아이쿱은 앞으로 10년을 이끌 비전으로 ‘새이프넷’(SAPENet)을 선포해 눈길을 끌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사람중심 경제를 위한 모임’을 뜻하는 말로, 개방성과 다양성, 공진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 ‘생산자 중심’에서 한발 비껴 서
생산자들을 한곳에 모으는 클러스터는 아이쿱이 무게를 두는 방식이다. 2004년 발생한 ‘더불어식품 혼입 사건’은 아이쿱이 ‘클러스터’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주요 생협에 우리 밀로 만든 제품을 납품하던 ‘더불어식품’이 수입잡곡과 감자전분을 혼합한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아이쿱은 그 생산자와 거래를 전면 중지하고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철저한 친환경 생산 및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가공생산자들의 생존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생산자들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아이쿱이 괴산군과 투자협약을 체결하면서 본격화한 아이쿱의 ‘클러스터’ 구상은 시범사업 성격으로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2014년 먼저 실현됐다. 다만, 괴산의 방식과 달리 가공생산자들이 공방에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별 공방을 노동자 소유기업 형태로 운영하면서 공방 노동자와 생산자들이 수익을 분배하는 방향으로 설정했다.
3일 오후 충북 괴산군의 ‘괴산자연드림파크’ 잔디광장에서 아이쿱(iCOOP)생협 20주년과 괴산자연드림파크 개장을 기념하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신창섭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은 “클러스터는 가공생산자들을 한곳에 모으면서 농민들의 농외소득 증대를 위해 농민들도 가공시설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일인데, 농민 등 1차 생산자나 가공생산자들이 당장 넓은 땅을 살 자본력이 없다”며 “아이쿱 조합원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서 기반시설을 닦고 공방시설은 기존의 가공생산자와 농민들이 함께 투자해 클러스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공생산자와 1차 생산자들이 분배한다는 개념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21세기생협연대’로 출발한 아이쿱의 몸집은 20년간 놀라울 정도로 불어났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사업(매출) 규모는 5500억원대. 조세특례법상 중견기업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액수다. 전국에 회원조합 98곳, 조합원 27만명을 거느렸고 운영하는 매장만 227곳에 이른다. 몸집만큼이나 보폭도 크게 넓어졌다. 대학에 투자해 사회적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소도 세웠으며, 자체 품질검사센터까지 뒀다. 비영리·사회적경제 부문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성공신화’를 넘어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서는 배경이다.
그간 아이쿱이 보여준 행보엔 몇가지 특징이 있다.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의 품질과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생협에 소비자를 우선시하는 문화를 들여온 점이다. 전통적인 생태·환경·생산자 중심주의에서 한걸음 비껴 선 셈이다. 2011년에 나온 <새로운 생협운동의 미래>에 나온 “많은 수의 소비자가 있어야만 결국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문구는 아이쿱의 정신을 보여주는 뼈대라 할 만하다. 더 많은 소비자에게 안전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생협의 진짜 존재 이유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2일 충북 괴산군의 괴산자연드림파크에서 열린 아이쿱생협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현장.
■ “사회적경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아이쿱에 납품하는 농가나 기업에 선수금을 지급하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조성규 ‘파머스쿱’(아이쿱의 농산물 생산자회) 이사장은 “예전에는 농협에서 이자를 내고 대출을 받거나, 외상거래를 해야 했는데 선수금을 받으니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이사도 “연 단위로 미리 발주를 하고, 선수금이 필요하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이쿱의 20년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경제가 뿌리를 내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20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만큼이나 과제도 적잖다. 심포지엄에 참여한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아이쿱은 한국 사회에서 협동적인 삶을 꿈꾸는 청년과 세계에 한국의 사회적경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한 뒤, “다른 나라에서 허용되는 협동조합의 공제사업 허용 등을 통해 규모화되지 않은 약소 협동조합이나 아이쿱처럼 제2의 도약을 꿈꾸는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 조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괴산/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