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진입이 금지된 도로에 자율주행차와 개인형 모빌리티가 다니고, 주민들의 의료 정보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맞춤형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미래형 도시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국토교통부는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국가 시범도시 시행계획을 발표하고, 스마트시티 조성에 참여하는 113개 기업으로 이뤄진 융합 얼라이언스도 발족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된 시행계획을 바탕으로 연내 실시계획을 마련해 2021년 말부터 실제 주민이 입주할 수 있도록 스마트시티를 조성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선포식에 참석해 “교통·치안·재난방지·의료·돌봄서비스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스마트시티는 4차산업혁명의 요람”이라며 “정부는 스마트시티형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추진하고 올해부터 2021년까지 정부와 민간을 합쳐 3조7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마트시티 시범도시는 과거 공공이 주도하는 방식을 벗어나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도시 조성이다. 먼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뇌공학)와 플랫폼 전문가인 황종성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위원이 각각 마스터플래너(MP)로 참여해 정보통신(IT) 기술과 시민 편의가 결합된 스마티시티 구상을 주도했다. 스타트업·중견기업·대기업이 망라된 융합 얼라이언스는 스마트시티 조성에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하기 위해 도시 조성에 참여한다.
먼저 정재승 교수가 마스터플래너로 참여한 세종 ‘5-1생활권’은 인공지능(AI)?데이터?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모빌리티?헬스케어·에너지 등 7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모델이다. 먼저 특정 지구 안에 일반차량 통행이 금지되는 대신, 자율주행차와 세그웨이 등 개인형 모빌리티, 공유자동차로 구성된 스마트 모빌리티 구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도시계획·운영도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세종에 조성되는 스마트시티는 특히 헬스케어에 주안점을 뒀다. 개별 병원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환자의 의료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고, 응급 환자가 있을 경우에는 최적화된 응급 의료 체계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개인 건강정보 등 분석을 통해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자 관리와 맞춤형 헬스케어까지 추진할 방침이다. 이곳에는 계획인구 2만2천여명(9천호)이 입주할 예정이다.
황종성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위원이 밑그림을 마련한 부산 에코델타시티는 로봇 기술이 주로 활용될 예정이다. 공원, 학교, 주차장 등에 현장 관리 및 안내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이 배치된다. 또 친수구역에 위치한 입지조건을 반영해 도심 하천 수질 개선과 물 재이용 시스템도 구축된다. 고령화 추세에 발맞춰 입주민의 걸음·심박수·수면 시간 등 일상 데이터를 이용한 헬스케어 서비스도 제공된다.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스마트시티 지구는 계획인구 8500여명(3380호)을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청사진이 현실로 옮겨지는 과정에는 만만찮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법제도와 충돌하는 아이디어가 상당수 포함돼 있고, 민간 기업의 사업모델도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의 의료 정보를 한데 모은다는 헬스케어 구상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바이오헬스산업이라는 영리 목적에 활용하는 것으로 시민사회진영의 비판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개인 의료기록을 한데 모으는 행위 자체가 현행법상 불법일 뿐만 아니라,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주체가 결과적으로 민간 의료기관과 헬스케어 사업자라는 면에서 우려스럽다”며 “민간 기업의 사업 모델 개발을 위해 환자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일”이라고 했다.
스마트 모빌리티를 구현하기 위해 특정 지구를 정해 일반 차량의 통행과 주차를 금지하겠다는 구상은 입주민의 불편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 또 현행법상 세그웨이·전동보드 등을 이용할 땐 원동기 면허를 소지해야 하는 등 법 제도와 충돌하는 면도 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스마트 모빌리티 구현을 위한 테스트 베드의 의미가 있으며, 자율주행차, 공유차량 등으로 입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의료 정보 수집과 퍼스널 모빌리티 사용 등 기존 법체계와 충돌하는 부분은 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공공 부문이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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