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벗어나지 못해 ‘준(準)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부진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어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6일 ‘준디플레이션의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물가상승률이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지만 0%대의 저물가가 상당기간 나타나는 현상을 준디플레이션으로 개념화할 수 있다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최근의 저물가 지속은 수요 쪽의 하락 압력과 공급 쪽의 물가 안정화에 기인한 것으로 연구원은 판단했다. 최근 국내 경제는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격차인 국내총생산(GDP)갭률이 하락하고, 소매판매와 설비투자가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여 총수요 부족이 우려된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1.8%를 기록하면서 지디피갭률은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연구원은 근로자의 실질임금 증가로 가계의 소득여건이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 부진이 가계의 소비 여력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봤다. 특히 소비지출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30~50대의 신규취업자수와 실업률이 다른 연령대에 견줘 부진해 소비 수요를 제약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업의 투자 부문에서는 지난해 이후 확대되던 설비투자 조정압력이 올 들어 축소돼 투자 유인이 감소한 것으로 판단했다. 설비투자조정압력은 지난해 1분기 이후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올해 1분기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게다가 세계 경제성장률 둔화 등으로 해외수요도 감소해 투자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공급 측면에서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물가 상승 압력은 낮은 수준인데다 국내 식품가격이 하락하며 공급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와 국제 원자재가격(CRB) 지수가 상승하는 추세이지만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마이너스를 보여 원자재 수입물가 상승 압력은 제한적이다. 국내 농축수산물 및 신선식품 가격 상승폭의 큰 폭 둔화로 식품 공급물가도 안정적이다.
유통구조 변화도 물가상승 압력 완화에 기여했다. 온라인 유통 플랫폼 서비스의 발달로 결제와 배송이 용이해지며 제조업자와 도매업자로부터의 직접 구매가 늘어났다. 이는 유통단계가 축소되는 효과가 있으며, 공급자의 경쟁을 높여 공급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데 기여했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올 들어 전국 주택매매가격 상승세가 크게 둔화하고 전세가격은 하락추세가 확대되면서 주거비용 관련 물가 상승 압력도 완화됐다.
정책 측면에서도 긴축 재정 운영이 총수요 확대에 부정적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16년 이후 초과세수 등으로 관리재정수지의 개선세가 지속됨에 따라 총수요 확대 제한과 물가 상승 둔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원은 “저물가 현상의 원인 중 수요 측면이 공급 측면보다 더 강하다면 경기 부진의 악순환으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면서 “저물가와 경기 부진이 상호 작용해 준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가 하락→소비·투자 부진→물가 하락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정지출 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기준금리 인하도 고려해야 한다고 연구원은 짚었다. 또 경제 주체들의 디플레이션 기대 심리 확산 소지를 차단하고 체감물가 안정에도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