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개편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변경에 따라 경제성 낮은 비수도권 사업이 대거 예타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재정의 누수를 막아야 하는 제도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좋은예산센터 소장)는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재정학회 주최 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예타 제도 변화에 따라 종합평가(AHP) 주체가 바뀔 경우 통과율이 대폭 상승할 수 있고, 특히 비수도권 사업의 경우 경제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판정되더라도 손쉽게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은 2009~2018년 예타를 거친 건설사업 243건을 분석했는데, 경제성 분석(B/C)과 종합평가의 가중치를 개편안에 따라 수정할 경우, 예타를 통과한 수도권 사업 2건이 탈락으로 바뀌고, 탈락한 비수도권 사업 7건이 통과로 바뀐다고 밝혔다. 경제성 평가와 균형발전 등 항목마다 반영되는 가중치가 변경되는데 따른 결과다. 이 가운데 통과로 바뀌는 비수도권 사업의 경제성 평가 수치는 0.16~0.85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최악의 경우 비용이 편익보다 6배 이상 드는 사업도 예타를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바뀐 예타 제도에 따르면 경제성 점수가 최하점을 받더라도 정책성 항목에서 ‘약간 적절’(9등급 평가 가운데 4등급)로만 평가하면 예타를 통과할 수 있는 점수가 나온다”며 “결과적으로 예타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데 경제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예타 제도의 목적은 경제성이 현저히 낮은 사업의 시행을 막아 예산 낭비를 막자는데 있다”며 “개편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도입 취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교수는 예타 통과를 위한 최소한의 경제성 평가 기준을 두는 등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적어도 경제성 평가에서 0점을 받더라도 예타를 통과할 수 있는 제도 설계를 그대로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균형발전 등 정책 평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종합점수만으로 예타 통과 여부를 결정할 수 없도록, 종합평가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짚었다.
예타 제도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친 뒤 국가재정의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재정 사업의 경제성과 정책성 등을 판단해 시행 여부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예타가 경제성 판단에 치우쳤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4월 비수도권 지역 사업의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를 강화하는 등 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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