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사고 원인 파악을 위해 열차 운전실에 설치된 영상기록장치가 여러차례 훼손된 사실이 한국철도공사 내부 문건으로 드러났다. 영상기록장치 훼손은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지만 철도공사는 기관사 등에게 경고만 하고 수사 의뢰는 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7일 대전 한국철도시설공단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철도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올해 2월 ‘동력차 영상기록장치 관련 법령 준수 철저 지시’라는 제목의 철도공사 내부 공문을 공개했다. 철도공사는 이 공문에서 “동력차 운전실에 설치한 영상기록장치는 전방카메라에 한하여 영상을 촬영·기록 중에 있으며 각 부품이나 케이블 훼손 및 임의조작 시 철도안전법령에 저촉됨을 지속적으로 안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점검 과정에서 위반한 사례가 발견”됐다며 “운전실에 승차할 수 있는 모든 직원들에 대해 재차 교육을 시행”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의원이 철도공사에서 제출받은 사진을 보면, 열차 운전실 내부를 비추는 카메라 렌즈가 테이프로 가려지거나 열차 전방 운행 상황을 촬영하는 카메라 렌즈가 파손된 사례가 확인됐다. 영상기록장치와 연결된 전원 케이블이 뽑힌 사례도 있었다. 박재호 의원실에서 고의 훼손이 의심된 사례가 몇건이냐고 질의하자 철도공사 쪽은 “별도로 조사하지 않아 수치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2016~2017년 제정된 철도안전법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철도운영자는 열차에 영상기록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영상기록장치는 선로변을 포함한 철도차량 전방의 운행 상황과 운전실의 운전조작 상황을 촬영하도록 설치돼야 한다. 이를 위반해 “설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영상기록장치를 임의로 조작”하면 1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게 돼있다. 철도노조는 입법 과정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모든 열차에 운행정보기록장치가 있으므로 운전실 안에 따로 카메라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기관사 감시에 따른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철도공사는 올해 점검을 통해 기관사와 전철 차장이 영상기록장치를 임의로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해당 사업소장을 통해 경고하고 교육을 시행하는 선에서 사건을 정리했다. 박 의원은 “영상기록장치가 훼손된 것을 알고서도 철도공사는 수사 의뢰한 적이 없다. 철도공사가 법도 무시하고 안전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회사와 노조가 서로 짬짜미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영상기록장치 관리도 부실했다. 철도공사 내규상 점검 주기가 명시되지 않아 2017년에 설치된 장치 1274개 가운데 127개는 점검이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점검 항목이나 양식도 없어 수첩에 수기로 작성하거나 카카오톡 메신저로 점검 결과가 보고된 사례도 있었다. 관리 상태가 이렇다 보니 철도사고 조사를 위해 수사기관이 2018년부터 철도공사에 23건의 영상기록을 요청했으나 철도공사는 “저장된 영상이 없다”며 7건의 기록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 의원은 “운행기록 촬영을 아예 하지도 않고 영상기록도 없다고 하면 없는 걸로 되고 있다. 국민 안전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코레일이 이래도 되느냐”고 질타했다. 이에 손병석 철도공사 사장은 “영상기록장치 관리에 소홀했다. 앞으로 모든 차량에 있는 영상기록장치가 작동되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영상기록장치 훼손 사례에 대해서는) 별개 건을 들여다본 뒤 수사 의뢰의 필요성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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