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뛴다/① 김광로 LG전자 인도법인장
우리 경제는 내수가 부진한데도 수출 호조로 성장세를 유지했다. 하루 1조원어치를 넘어선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에는 기업인들의 피땀이 얼룩져 있다. 불굴의 의지로 세계를 누비는 우리 기업인들의 발자취를 통해 한국 경제의 내일을 내다본다.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와 흙먼지, 툭하면 일어나는 정전사태 …. 인도는 인구 11억의 큰시장을 노리는 한국의 전자업체한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소니 같은 글로벌 기업과 인도 토종 상표들이 진을 친 시장의 진입장벽도 두터웠다. 지난 16일 인도 델리 공장에서 만난 김광로(60) 엘지전자 인도법인장은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8년만에 6개 가전 선두로 인도 가전시장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엘지전자는 현지화에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네 나라)의 한 축인 인도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 기업들한테는 불모지였다. 하지만 국외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김 법인장에게는 개척해야 할 ‘또하나의 시장’일 뿐이었다. 1977년 중동의 두바이를 시작으로 미국, 중·남미, 유럽 등 전 세계를 30년 가까이 누비고 다닌 그는 시장 개척에 이골이 나 있던 터였다. “중동시장 개척 당시 눈을 찌르던 모랫바람이 생각나더군요. 결국 소비자 마음을 붙잡는 게 관건이라 보고 밑바닥부터 파고들었죠.” 트럭으로 인도 전역을 돌며 순회홍보에 나섰다. 시골마을에서는 즉석 노래자랑도 펼쳤다. 광활한 영토, 비포장길 ….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한번 출장 나가면 20일은 족히 걸리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된 지 6개월이 지나자 인도인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군요!” 현지인 채용 주인의식 심어 자신이 생겼다. 텔레비전에는 인도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크리켓 게임 프로그램을 넣고, 주마다 다른 언어 사정을 감안해 초기화면에 힌디어와 타밀어 등 5개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불안정한 전력사정 탓에 전압이 400V까지 치솟자 어떤 경우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 강한 제품의 개발을 독려했다. 고장신고가 들어오면, 24시간 안에 달려갔다. 그는 “기존 업체들이 우리와 거래하려는 딜러들에게 물건을 안 줄 정도로 견제가 심했지만, 소비자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과 서비스로 정면돌파를 했다”고 말했다. 한발 앞서 들어온 소니가 광고에 의존하는 소극적 방식으로 대응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공략법이었다. 현재 인도에서 엘지 제품은 세탁기, 텔레비전 등 모두 6개 품목에서 점유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델리 외곽의 신흥 공업지역인 노이다에 자리잡은 엘지공장의 임직원 1561명 중 한국인은 16명뿐이다. 인도 남서부의 푸네 공장에는 5명만 뒀다. 자존심 강한 인도인에게 자기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주자, 이들은 생산성 향상으로 보답한 것이다. 경쟁사들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불과 1~2년 만에 법인장을 갈아치우는 것과 달리, 김 법인장은 97년 첫걸음을 내디딘 이후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돈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더군요. 저는 오너십(주인의식)을 어떻게 불어 넣어주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믿고 맡기는 것이지요. 인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인도인 아닙니까?” 델리·노이다/글·사진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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