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이날 주요 7개국(G7) 정부와 중앙은행 총재들의 긴급 전화회의 직후에 나온 깜짝 조처다.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제의 어려움이 주요국의 양적 완화 등 정책 공조를 촉발했던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연준은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을 통해 기준금리를 1.00~1.25%로 0.5%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혔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급속하게 번지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전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으로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당초 연준은 오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아침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긴급 전화회의를 연 직후 0.5% 인하를 전격 발표해 선제적인 조처를 취했다. 연준은 성명에서 “미국 경제의 펀더맨털은 여전히 강하다”면서도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제 활동의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를 열지 않고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에 앞서 이날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긴급 전화회의(콘퍼런스 콜)를 열어 “강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고, 하강 위험으로부터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정책 도구를 사용할 것이란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공동 금리 인하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내놓거나, 이를 직접적으로 예고하지는 않았다. 이날 회의는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긴급 요청한 것으로, 뉴욕 증시 개장 전에 열렸다. 이에 대한 실망감으로 개장 뒤 크게 하락했던 미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연준의 금리 인하 발표로 상승하다가 다시 하락하는 등 급변동 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 연준을 비롯해 주요 7개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움직임은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 버금갈 정도로 엄중하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이날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새 위험으로 등장하고 있다”며 “잠재적 위험에 비례하는 적절하고 조준된 대응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이 오는 1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1%포인트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아시아 국가에서도 금리 인하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는지, 아직 서막에 불과한지 시계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사망자와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월가에서는 다른 전염병이 ‘유성’에 불과했다면 코로나19는 꼬리가 긴 ‘혜성’이라고 비유했다. 이미 유로존은 정책금리가 제로이고 일본은 마이너스여서 추가적인 통화완화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도 의문이다.
주요국 중앙은행과 재정 당국이 조율된 부양책을 펼칠 것이란 기대로 강한 반등 흐름을 이어가던 아시아 증시는 오후 들어 주춤거렸다. <로이터> 통신이 이날 주요 7개국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회원국들한테 특별히 새로운 재정지출이나 공동 금리인하 같은 구체적인 조처는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공동성명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보도하면서 상승폭이 제한됐다. 코스피는 개장 직후 급등하며 2050 선을 넘어섰으나 외국인의 매도세가 멈추지 않아 0.58% 오른 2014.15로 장을 마쳤다. 1180원대로 내려갔던 원-달러 환율도 상승 반전해 1195.2원으로 마감됐다. 일본 증시는 1% 넘게 하락했고 전날 급등했던 중국 상하이 지수도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한광덕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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