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13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경제·금융 상황 특별점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 맞은편 왼쪽부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홍 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청와대 제공
미국·유럽 증시 대폭락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은 메르스, 사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이라며 “정부는 전례 없는 대책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추가경정예산안 증액을 뛰어넘는 특단의 경제 정책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먼저 금융위원회는 16일부터 6개월간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청와대로 소집해 ‘경제·금융 상황 특별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금융시장 및 제반 경제 동향에 대해 보고를 받은 뒤 “경제 정책을 하는 분들은 과거의 비상 상황에 준해서 대책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나 지금은 메르스, 사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상 경제시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과거 사례와 양상이 다르고 특별하니 전례 없는 일을 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과거에 하지 않았던 대책을, 전례 없는 대책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점검회의를 마친 홍남기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 등 경제팀 수장들은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물 경제와 금융 부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금융위원회는 임시금융위원회를 열어 앞으로 6개월 동안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시장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시장안정조치를 의결했다. 이번 시장안정조치는 16일부터 적용된다.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2009년 5월에도 8개월 동안 공매도가 금지된 바 있다. 금융위는 또 같은 기간 동안 상장기업의 자기주식 매수주문 한도를 ‘취득신고 주식 수 전체’로 확대해 기업들이 직접 주가 폭락에 대응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기로 했다. 증권회사의 과도한 신용융자담보주식의 반대매매를 억제하기 위해 신용융자담보비율 유지 의무도 6개월간 면제한다. 정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신속한 자금 집행을 위해 지역신용보증재단 신청·접수 업무의 민간은행 위탁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길게는 2~3개월까지 늘어진 대출 심사 기간이 3주가량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문 대통령이 한은 총재까지 참석한 가운데 강도 높은 정책 대응을 주문한 만큼, 당장 한은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은은 이날 임시금융통화위원회 개최 필요성에 대해 현재 금통위원들 간에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공지했다. 시장 일각에선 한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금리 결정 결과가 나오는 18일을 전후해 임시금통위를 열고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 심사가 진행 중인 추경의 규모나 지원 범위 등이 확대될지도 관심사다. 문 대통령이 말한 ‘전례 없는 대책’에 최근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재난수당이 포함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청와대는 앞서 지난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안한 재난긴급생활비 지원의 정책안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시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업무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경질 논란’이 불거진 홍 부총리에 대한 신임 뜻을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오전 회의를 마치며 홍 부총리에게 “지금까지도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홍 부총리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11조7천억원 규모인 정부 추경안의 대폭 증액을 건의한 뒤 정부 쪽이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를 전하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홍 부총리의 ‘해임 건의’를 언급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추경 규모를 둘러싼 당정 간의 불협화음이 노출된 바 있다. 홍 부총리는 이에 전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기를 버티고 이겨내려 사투 중인데, 갑자기 거취 논란이 일어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다. 기재부는 재정 지원의 합리성과 형평, 재정건전성과 여력 등을 치밀하게 보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현웅 이완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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