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다시 빠르게 늘어나는데 소득 증가세는 갈수록 더뎌져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의 비율이 역대 최고치로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외환위기 수준의 실업 충격과 자영업 매출 타격이 지속될 경우 국내 76만가구가 1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이 24일 공개한 ‘2020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 1분기 말 기준 가계부채는 1611조원으로 1년 전보다 4.6% 늘어 전분기(4.1%)보다 증가폭이 커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자금 수요와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한 영향이 컸다. 반면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5개 분기 연속 둔화했다. 이에 따라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년 전보다 4.5%포인트 높아진 163.1%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7년 1분기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가계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47.7%)도 0.5%포인트 상승했다.
1분기말 기업대출(1229조원)도 1년 전에 견줘 11.6% 늘어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문(가계+기업)의 빚은 201.1%에 달했다. 민간 빚이 명목 지디피의 2배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계 살림이 지금처럼 취약한 상황에서 실업률 급등과 자영업 매출 감소가 이어질 경우 75만9천가구가 1년 안에 유동성 한계에 부닥칠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실업 충격을 감내할 수 있는 기간이 1년 미만인 임금노동자 가구는 45만8천가구로 추산됐다. 이들 가계는 금융자산 등을 처분해도 적자 누적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또 코로나19 확산 직후 신용카드 매출감소율만큼 사업소득이 급감할 경우 1년도 견뎌낼 수 없는 자영업자는 30만1천가구로 분석됐다. 이보다 짧은 6개월도 못 버틸 임금노동자(28만9천가구)와 자영업자(18만4천가구)는 모두 47만3천가구로 추산됐다.
한은은 “금융자산이 적은 임시일용직 가구는 단기간에 부실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숙박음식업 등을 중심으로 자영업 가구의 부실 규모도 커질 것”이라며 “종합적인 고용안정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경우도 코로나19 여파가 올해 내내 이어질 경우 이자보상배율이 1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 50.5%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국내기업의 절반 정도가 장사해서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을 만큼 재무건전성이 나빠진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 미만인 기업의 비율은 32.9%였다.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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