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현재 연 0.5%인 기준금리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1%대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부동산 과열보다는 경기 위축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춰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동결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올해 성장률이 지난 5월 전망치(-0.2%)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은 물론 정부 지원책 등에 힘입어 반등했던 민간소비의 회복도 당초 전망보다 더딜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25일 이주열 총재가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해야 할 만큼 큰 여건 변화가 없다”고 말한 지 3주만에 경기에 대한 인식이 후퇴한 셈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중요한 상황변화가 있었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2분기중 정점을 찍고 3분기부터는 조금씩 수그러드는 것으로 전제를 했는데, 7월 들어서도 확산세가 가속화해 ‘워스트(비관) 시나리오’로 가는 우려가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수출 감소폭이 예상보다 커서 2분기 성장전망치도 낮췄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 5월 전망 때 코로나19 세계 확진자수 정점이 3분기로 미뤄지고, 봉쇄조처 완화속도가 느려지는 비관 시나리오로 갈 경우 올해 성장률이 -1.8%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총재는 발언 직후 시장의 충격을 의식한 듯 “지금 봐서는 워스트 시나리오까지는 안 갈 것 아니냐하는 기대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3차 추가경정예산 집행에 따른 성장률 제고 효과는 0.1∼0.2%포인트로 추정했다.
한은은 이날 낸 ‘국내외 경제동향’ 자료에서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에 따라 비정보기술(IT)부문을 중심으로 수출 감소폭이 크게 확대됐다면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미-중 무역갈등 심화, 반도체 경기 회복 지연 등을 하방 리스크로 꼽았다.
이 총재는 최근 부동산시장 불안에 대해서는 “주택가격 오름세와 가계부채 증가세 확대에 따른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겠다”면서도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과 수급대책 등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다주택자의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주택가격의 추가 상승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아가 이번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주택시장 상황이 아니라 성장과 물가의 전망을 감안해 판단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금리 결정은 최근 부동산 과열 상황보다는 실물경제 부진에 초점을 맞춘 결과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앞으로도 국내경제가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나타낼 때까지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당장은 유동성 환수 등 통화정책 정상화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도 했다.
시장에서는 예상보다 한은이 비둘기(통화완화 선호)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신얼 에스케이(SK)증권 연구원은 “집값 상승과 과잉 유동성에 대한 부담에도 저금리 기조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은 17일 임시 금통위를 열어 설립 절차가 마무리된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에 대한 대출한도와 조건을 의결한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