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달 30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을 만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공영운 현대차 사장, 알버트 비어만 사장, 이상수 지부장, 정의선 회장, 하언태 사장, 이원희 사장, 송호성 기아차 사장. 현대차 제공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취임 보름여 만에 노동조합과 만나 미래차 관련 현안을 논의했다. 정 회장이 노조와 공식 만남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의선식’ 노사관계 전략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3일 현대차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쪽 설명을 종합하면, 정 회장은 지난달 30일 울산공장에서 이상수 지부장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같은 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울산공장을 방문한 직후에 있었던 일로, 노조 쪽에서 먼저 만남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오찬에는 하언태 사장과 이원희 사장, 장재훈 부사장 등이 함께 참석했다.
노사 양쪽은 미래차 관련 국내 투자와 고용 문제를 주로 논의했다. 이날 발행된 현대차지부 소식지를 보면, 이 지부장은 정 회장에게 “조합원들이 총 고용 보장 합의서를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회장이 믿음을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단체교섭을 통해 미래차 전환이 본격화돼도 인위적으로 인원을 감축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정 회장은 “노사 간의 단체협약은 중요한 것”이라며 “고용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다만 현대차가 배포한 자료에는 정 회장이 “고용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향후 울산공장 생산 물량에 대해서도 의견 차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부장은 “전기차로 인한 파워트레인 부문의 사업 재편이 불가피한 만큼 전기차에 필요한 대체 산업을 파워트레인 부문 울산공장 안에서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소식지는 정 회장이 이에 대해 “전기차 시대로 인한 신산업 활용 방안에 대해 지부장의 생각을 존중하며 이후 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사쪽 자료를 보면, 정 회장의 답변은 “전기차로 인한 신산업 시대에 산업의 격변을 노사가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 변화에 앞서 나갈 수 있도록 합심해 새롭게 해보자”는 데 그쳤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의 노무관리 전략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명예회장은 취임 초반인 2001년 울산공장을 찾아 이헌구 당시 노조위원장에게 협력을 당부한 바 있으나, 이후로는 알려진 만남이 없다. 이번 만남에서 정 회장은 이 지부장에게 “회장으로 있는 동안 노사관계 안정이 목표”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2004년부터 노무관리 전략을 담당해온 윤여철 부회장이 불참한 것도 눈에 띈다. 윤 부회장은 국내 생산과 정책 개발 업무를 겸하다가 올해부터는 정책 개발만 맡고 있다. 노조와 만나는 일정은 수일 전에 확정됐으나 윤 부회장은 아예 울산에 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두고 노조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정 회장이 직접 나선 것 아니냐는 풀이도 있다. 현대차 노조는 2018년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추진 당시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현대차지부 현대모비스위원회도 분할합병을 막기 위해 총파업을 벌였다. 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노조나 시민단체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아무래도 여론전의 측면에서 중요성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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