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정부의 공정경제 3법과 집단소송법 제정안, 징벌적 손해배상제(상법 개정안)가 국회에 제출된 이후, 최근 2개월 남짓 동안 경제단체와 일부 매체를 중심으로 해당 법률안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보도가 쏟아졌다. 이 중에는 사실과 다르거나 현실 가능성이 낮은 내용도 있었다. 주요 발표와 보도 사례를 중심으로 사실 관계를 따졌다.
■ ‘얼음 소송’ ‘비만 소송’은 집단소송 부작용?
“미국 스타벅스는 2016년 얼음이 너무 많고 커피 양이 적다는 이유로 500만달러(약 58억원)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했다. 맥도날드도 광고 내용보다 실제 햄버거의 칼로리가 높아 비만 위험을 관리하지 못했다고 피소됐다. 두 기업은 최종 승소했지만 수년간 소송에 시달리며 브랜드이미지 훼손, 합의금 지급 등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9월 한 경제신문 1면 머릿기사에 보도된 내용 중 일부다. 식품업계 거물인 두 회사가 터무니없는 소송을 당해 사업에 타격을 입었으며, 국내에 집단소송법이 도입되면 비슷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취지다. 이런 주장은 서브웨이, 코카콜라 등 사례를 더해가며 최근 일부 언론과 재계 단체의 입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문제는 이렇게 ‘무차별 집단소송의 비극’을 역설하는 데 실제와 다르게 왜곡된 사례들이 쓰였다는 점이다. 위 보도와 달리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모두 해당 소송에서 합의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 스타벅스 ‘얼음 소송’ 2건은 각각 2개월, 6개월 만에 각하 판결을 받아 “수년간 소송에 시달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집단소송법 도입에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사실과 전혀 다른 ‘가짜뉴스’를 이용한 셈이다.
소송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주장도 근거를 찾기 힘들다. 특히 맥도날드 ‘비만 소송’은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소송이 제기된 2002년 맥도날드는 미국 사회에서 건강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에 이미 1년 가까이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위기 상황과 소송 등이 맞물리면서 맥도날드의 전략도 변화의 급물살을 탔다. 한 예로 2003년에는 앙트레 샐러드를 새 메뉴로 도입했고, 저지방·저칼로리 메뉴를 새로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미국 내 매출은 2002년 54억달러(약 6조원)에서 해마다 5억∼6억달러씩 늘어 2005년 70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무차별 집단소송이 급증하고 있다는 주장도 틀린 숫자를 인용한 가짜뉴스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9일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의 경우에는 ‘인공감미료가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미검증 연구결과를 근거로 코카콜라에 대해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등 기업들의 준법경영 노력과 무관하게 집단소송 건수는 174건(2010년) → 217건(2015년) → 428건(2019년)으로 급증하는 추세”라고 했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집단소송법 도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한상의가 인용한 숫자는 증권관련집단소송만 집계한 것으로, 집단소송 전체 건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통계는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실상과 맞지 않는 과거의 사례를 무리하게 인용한 주장도 있다. 집단소송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이 제도가 변호사들 배를 불리는 데만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01년 연체료를 부당하게 받아갔다는 이유로 미국 비디오 대여 업체 블록버스터에 제기된 집단소송을 “피해자 구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못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원고 쪽 변호사는 수임료로 925만달러(약 100억원)를 받은 반면 소비자들은 1달러짜리 쿠폰을 받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최근 상황과는 거리가 먼 지적이다. 이미 관련 법이 제정돼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도입된 집단소송공정법을 보면, 블록버스터 소송처럼 소비자에게 쿠폰을 지급하는 합의의 경우 “변호사가 받는 보수는 실제로 상품으로 교환된 쿠폰 가치 또는 변호사가 소송에 합리적으로 들인 시간을 기반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변호사의 이런 보수는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실제로 서브웨이 ‘풋롱’(Footlong·12인치 길이라는 의미) 샌드위치 소송에 대한 합의는 이런 이유로 법원에서 퇴짜를 맞았다. 2013년 서브웨이는 풋롱 샌드위치가 실제로는 12인치보다 짧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했고, 2년 뒤 이런 관행을 개선하는 동시에 변호사에게 52만달러를, 대표당사자에게 500달러를 지급하는 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7년 미국 제7연방순회항소법원은 “합의 전에 이미 서브웨이가 관행을 개선했다”며 “소비자들은 쓸모없는 혜택만 받고 변호인단만 보수를 받는 집단소송은 기각돼야 한다”고 했다.
대륙법 체계에서 집단소송을 도입하면 유례 없는 기업 과잉처벌 국가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경련은 지난달 정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일본, 독일, 프랑스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행정처벌과 형사처벌이 중심이기 때문에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다. 만일,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가 영미법 제도인 집단소송과 징벌적손해배상을 도입한다면 유례가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과잉처벌 국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경련이 예시로 든 독일도 이미 집단소송과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독일은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계기로 2018년 민사소송법을 개정, 최근 표본확인소송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소비자단체만 원고가 될 수 있고, 관련 소비자가 소송등록부에 등록해야 판결의 효력이 적용되는 ‘옵트인’(opt-in) 제도라는 점에서 미국의 집단소송과 차이가 있다.
실제로 독일 연방소비자센터는 2018년 11월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첫 표본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소비자 47만여명이 참여했으며, 올해 초에는 이 중 23만5000명에게 총 8억3000만유로(약 1조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 양쪽이 합의했다. 1인당 4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이나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받은 배상 금액이 대부분 100만원에 그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리한 가정을 토대로 한 분석으로 투자자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견해도 있다.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정부 개정안에 담긴 사익편취 규제 강화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그 중 하나다. 개정안은 규제 범위를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기업에서 20% 이상 기업과 이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로 넓혔다. 이에 전경련은 지난달 22일 낸 보도자료에서 “(규제 강화로) 10조8000억원에 이르는 상장 주식이 매각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분 매각에 따른) 주가하락으로 소수 주주가 희생양이 될 수 있다”라는 언론 보도도 뒤따랐다.
이런 분석과 우려는 새로 규제 대상에 포함된 상장 기업 56곳 모두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개정안에 담긴 규제 최저선 이하로 지분율을 낮추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성경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정책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총수 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회사의 경우 지분을 팔더라도 (경영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친족이나 우호세력에 블록딜(장외 대량 거래)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2014년께 사익편취 규제를 첫 시행한 이후 일부 기업에서 지분을 시장에 그대로 팔아 주가에 부담을 준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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