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양력 설 연휴가 지난 직후 퇴근길이었다. 간단히 요기하려고 지하철 역사 내 분식집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유리문 너머 실내에는 조리도구는 물론 식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분식집 건너편 제과점도, 지역 특산물을 팔던 식품점 입구도 텅텅 비어 있었다. 분명 연말까지 문을 연 곳들이었다. 불 꺼진 가게 입구에는 장기화된 코로나19로 문을 닫는다는 종이와 함께 임대 문의 알림판이 있었다. 역사는 군데군데 이빨이 빠진 것처럼 스산했다. 코로나19의 상처를 여실히 보여준 광경이었다.
제임스 리카즈의 신간 <신 대공황>에는 ‘한계 일수’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새로운 수입 없이 지출만 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를 분석한 대목이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는 평균 일수는 27일이다. 음식점 한계 일수는 16일, 소매점은 19일, 미용실과 같은 개인 서비스업은 21일이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에게 닥친 현실은 이렇듯 한계를 뛰어넘는 위기의 연속이다.
미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전체 일자리의 50%, GDP의 45%의 상품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 대공황>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소상공인, 중소기업, 실제 사례를 비중 있게 살펴 경제 현실을 진단했다는 점이다.
리카즈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경고했으며, 2016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대선 승리를 정확히 예측했다. 그가 트럼프 당선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남과 달리 여론조사에만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붙은 외부 광고 수를 세고, 복음주의가 널리 퍼진 오자크 산지를 방문하고, 택시기사와 바텐더 등과 매일 나눈 대화를 활용했다. 단순 경제지수가 아닌, 실제 삶의 영역을 비중 있게 살폈기에 작가의 말은 현실에 밀착해 있다.
미국 생활정보 사이트 옐프(Yelp)는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영업점 가운데 9만 7966곳이 2020년 3월 1일~8월 31일‘영구 폐업’했다고 밝혔다. 제임스 리카즈는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보다 심각한 ‘신 대공황’에 돌입했다고 진단한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가 겹쳐 발생했고, 미국에서만 4개월 만에 6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정부의 재정정책도 화폐유통 속도가 떨어지면서 진정한 경기 부양책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가지수 상승은 코로나19가 실제 삶에 미친 영향을 말해주지 않는다”며 “기나긴 불황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암울한 전망만 하는 것은 아니다. 디플레이션 고비를 넘기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이용해야 한다며 자신만의 해법도 제안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위기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산 포트폴리오도 제공한다.
편집자로서 내가 주목한 이 책의 가치는, 모호하고 산발적이었던 코로나19의 충격을 광범위한 자료로 정리하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실체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우리 곁의 자영업자들을 얼마나 무너뜨리고,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빼앗아갔는지, 이것이 얼마나 큰 위기인지, 각국 정책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은 없는지 말이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가 장기적 불황이라는 진단은 두렵지만, 두려운 현실이라도 명확히 바라본 뒤에야 우리는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위기 극복은 언제나 위기의 실체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
책을 편집하던 때 우리 동네에는 무서운 속도로 길거리 가게가 사라졌고, 자영업을 하는 동생은 매출 감소로 빚이 늘었다. 내가 겪은 불편은 고작 여행을 못 가는 것이었는데 이웃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책을 만들 때, 나는 무너져 가는 이웃의 모습도 함께 보았다.
코로나19라는 무자비한 감염병으로 2020년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2021년에도 코로나19는 꺾이지 않고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겠지만, 이 변화를 인지하는 데에 <신 대공황>의 관점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 동네에서 사라진 분식집이 또 다른 어딘가에서 뜨거운 어묵을 팔고 있기를, 제과점이 다른 어느 곳에서 문을 열기를, 식품점의 짭조름한 오징어젓갈이 또 다른 이의 식탁에 오르기를 바란다.
송보배 알에이치코리아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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