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에너지전환포럼 출범 1주년 기념식에서 그린피스 관계자가 기업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경제의 비전과 전략은 유럽연합(EU)의 그린딜Green Deal) 정책에 잘 나타나 있다. 유럽연합은 2020년 1월, ‘2050년 탄소배출제로’를 목표로 하는 그린딜 정책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매년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약 1.8조유로(2400조원)을 기후위기대응 및 탈탄소 인프라 구축, 녹색산업 전환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그린딜의 핵심은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 달성을 비롯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50~55%로 강화, 세계무역기구(WTO)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탄소관세 도입 등이다. 특히 2050년까지 수송 부문 온실가스 90% 감축과 화석에너지산업 보조금 폐지를 결정했는데 이는 배연기관 자동차의 종말을 의미한다. 대신 전기자동차 충전소를 2025년까지 100만 개로 확대하고 항공 및 해상운송의 바이오디젤 및 수소연료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 자료, 2020. 3.11) 유럽연합이 ‘그린딜’의 투자계획에서 석탄과 원자력을 배제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는 2020년 7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를 축으로 해당 분야에 2022년까지 67조7000억원을 투입해 일자리 88만7000 개를,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190만1000 개를 창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판 뉴딜에는 기후위기나 에너지전환, 불평등 해소 등 우리사회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방향성과 의지는 보이지 않고 외형적 성장만을 지향해온 신자유주의경제 기조와 관료적 타성이 정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다 보니 코로나19 위기 국면을 틈타 재계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정책 패러다임이 작동하는 이른바 ‘재난자본주의’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후위기시대에 미래 식량안보기지로서의 농촌을 살리고, 농촌이 지역에너지 생산기지가 될 수 있는 ‘농촌 그린 뉴딜’이 빠져 있다. 아울러 디지털혁명, 제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발생할 실업 등 사회적 재난의 대비책이나 노동소득 감세, 금융·부동산·양도소득 등 불로소득에 대한 조세권 강화 등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추진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판 뉴딜 정책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추진했던
‘정통 뉴딜’에 비해서도 너무 미온적이다. 1932년 당선된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긴급은행법과 관리통화법을 마련해 금융제도 정비와 통화 규제를 강화하고, 농민문제 해결을 위해 과잉생산 및 농산물 가격 하락을 방지하는‘농업조정법’을 마련했다. 또한 산업부흥법을 통해 기업 간 과열경쟁을 억제하고,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노인연금과 실업자수당을 제도화했으며, 1936년 재선된 뒤에는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최저임금제와 주 40시간 근로제 등을 도입했는데 이러한 정신이 한국판 뉴딜정책에는 빠져 있다. 루스벨트는 재임 중 미국의 최고소득세율을 25%에서 79%까지 높였다.
녹색경제를 실현하는 과정을 경제의 녹색화라고 한다면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녹색 마인드’ 확산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성장지상주의에서 탈피하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 경제의 녹색화를 위해서는 크게 인식과 생활양식, 그리고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이 3가지는 긴밀하게 영향을 미친다. 녹색 마인드를 갖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환경과 경제와의 관계를 보는 자연관, 세계관, 종교관 등 가치 영역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이러한 것이 학교·사회교육 또는 언론·홍보를 통해 널리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녹색 마인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구를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가이아(Gaia) 이론’이나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천지와 부모는 한 몸”이라고 하는 ‘천지부모’(天地父母) 사상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어머니 대지’(mother earth) 사고를 들 수 있다. 1973년 환경경제학자 E. F.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에서 보인 ‘인간성 회복을 위한 경제학’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이러한 녹색 마인드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활 속에서 △전기·물·종이 등 자원 아끼기 △대기·수질·토양·쓰레기 등 오염 줄이기 △환경가계부 쓰기·에코 쇼핑·환경여가·환경단체 회원되기 등 친환경 습관 갖기 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경제의 녹색화를 위해서는 혁신적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인센티브(incentive) 중심의 촉진 제도와 패널티(penalty) 중심의 규제제도를 적절하게 마련해 시민 인식을 바꾸고 이러한 것이 생활양식 변화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연구원의 연구보고서 ‘녹색전환을 위한 10대 환경전략’(2021년 3월)은 탈탄소경제와 정의로운 전환을 핵심으로 △2050 탄소중립 이행 기반과 거버넌스 구축 △에너지전환을 위한 가격체계와 전력시장 구조 개편 △친환경 산업구조 개편과 정의로운 전환 △수소경제 선도를 위한 수소 밸류체인 기반 구축 △자원순환사회 조성과 순환경제로의 전환 △미세먼지, 유해화학물질 등 건강위해성 개선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과 녹색교통체계 구축 △하천의 자연성 회복과 기후위기 대응 △생태복원과 생태계서비스 확대 △한반도 환경공동체 구현 등을 들고 있다. 녹색전환을 위한 전략을 잘 정리해놓은 것 같다.
2020년 7월6일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 필원에서 열린 ‘제16차 녹색소비자연대 목적과사업연구회 토론회'에서 전인수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경제를 실현하려면 적시적소(適時適所)에 정책을 펴야 한다.촉진적 정책수단과 규제적 정책수단을 적절히 동원하는 것이 열쇠다. 촉진적 정책수단으로는 △탄소포인트제의 실질적 확대 △기본소득 도입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탄소금융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환경부가 2009년 탄소포인트제도, 2011년에 ‘그린카드제도’를 도입했으나 인센티브가 국민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만큼의 매력이 없다는 점에서 개선이 절실하다. 기본소득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전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이 주어지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늘었다. 민간 싱크탱크 ‘랩 2050’은 2019년 10월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 보고회를 열고 “2021년부터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원, 세제개편을 잘 하면 2028년까지 생계급여 수준인 65만원까지의 기본소득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원은 토지보유세 강화, 부유세·탄소세 도입, 부가가치세 인상, 주식양도차익 과세 정상화 등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면적인 기본소득제 도입의 전 단계로 도시청년의 농촌이주지원금 또는 농민 기본소득의 실시도 고려할 만하다. 2015년부터 개설된 우리나라 탄소배출거래권 시장이 ‘3년 새 10배 폭풍 성장’했다고 한다. 녹색경제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탄소금융에 대한 세제혜택 등 활성화 대책이 절실하다. 유럽연합(EU)은 2008년에 경제가 0.7% 성장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 감소함으로써 경제성장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감소하는 저탄소 산업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한국법제연구원, 2012년)
규제적 정책수단으로는 △배출부과금 강화 △탄소세 도입 △재생가능에너지법 도입 등을 들 수 있다. 쓰레기, 수질 및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경제적 제재수단인 배출부과금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1990년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했고, 스웨덴은 1991년에 환경세제를 개혁하면서 탄소세 도입과 동시에 법인세의 대폭적 감세를 실시해 성공했다. 독일이 오늘날 재생가능에너지 선진국이 된 것은 2000년 제정된 재생가능에너지법(EEG)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으로 독일은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정지하고, 2025년까지 전력공급의 40~4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며, 2050년까지 전력공급의 80%와 총에너지공급의 6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이 뿌리를 내리려면 이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법을 조속히 제정·실시해야 한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세계 각국은 5년 단위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수립해 유엔에 제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말 ‘2050 탄소중립’을 대내외에 천명한 뒤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로 2030년까지 2017년 배출량 대비 온실가스 24.4%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했으나 수정 요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목표가 너무 낮다.
우리나라의 경우 녹색화의 걸림돌인 고탄소 산업구조를 저탄소로 개혁하는 일이 급선무다. 2019년 우리나라의 제조업/에너지 다소비업종 비중은 24.8/8.4%로 EU의 16.4/5.0%보다 훨씬 높다. 석탄발전 비중도 40.4%로 미국 24%보다 훨씬 높다. 전체 차량 중 친환경차비중은 2.9%로 매우 낮다. 한국인의 연간 탄소배출량(생산기반)은 2018년 13.6톤으로 세계 평균보다 2~3배 높고, 1990년 5.8톤에 비해 2배가 넘는다. 이 기간 유럽 미국은 감소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저성장에 맞춘 국가시나리오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2050년이라는 목표시점에서 2040년, 2030년을 생각하는 ‘백케스팅’(Backcasting)의 시나리오가 절실하다. 일본에서는 후쿠다 야스오 총리 시절인 2008년 국가 기후변화 프로젝트인 ‘탈온난화 2050연구’ 결과로 <일본 저탄소의 시나리오-이산화탄소 70% 감축의 지름길>이란 책이 나왔다. 205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70% 감축 시나리오는
‘적절한 경제성장률’, 즉 활력사회(시나리오A)에서는 연간 성장률 2%, 여유사회(시나리오B)에서는 연간 1%를 잡았다. 시나리오 A는 활력 있고, 회전이 빠른, 기술지향의 사회인 반면, 시나리오 B는 여유 있고, 좀 느리며, 자연지향의 사회인데 실제로 이 두 시나리오가 혼재해 진행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시 감축주체와 부문을 포함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녹색경제 실현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그것도 단계적이자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미즈타니 요이치(水谷洋一) 등이 펴낸 <지구발! 스톱온난화 핸드북-전략적 정책형성의 추천>(2008)은 참고가 될만 하다. 온난화 추진을 위한 전략적 정책형성을 4단계로 나눠 △지역의 실태 파악과 분석 △시책의 전략적 선택 △정책수단 동원 △현상개혁을 위한 전략 순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전략적 정책 형성의 첫걸음은 온실가스의 배출 특성을 포함해 지역에서 지구온난화 대책을 구축할 때 활용·동원 가능한 지역자원, 제도 기반과 대책, 담당 주체의 역량 등의 실태를 파악·분석하는 일이다. CO2 배출량의 부문별 비중과 전국 비교를 통한 지역 특징을 파악하고 부문별 배출량의 증감 추이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지역자원 파악을 위한 평가항목으로 자연환경 분야(일조량, 바람의 상황, 강우량의 특성), 사회경제 분야(지역산업, 교통, 쓰레기, 에너지), 마을만들기 분야(환경교육, 주체간의 협력)를 들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 누가 주체가 돼 시책을 실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업계획 수립단계에서 자금융자 내지 일부보조, 세금 감면, 생산전력량에 맞는 보조금 지원과 같이 재생에너지의 도입·생산을 장려하는 공급측면의 ‘푸시정책’(Push Policy)과 그린전력 구입제도와 같이 재생에너지의 수요 확대를 촉진하는 ‘풀정책’(Pull Policy)을 적절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가정 분야에서는 CO2배출량 감축을 위해 에너지절약, 자원절약 등 생활행동을 변화시키는 방법과 효율이 좋은 에너지 기기를 선택하는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효율이 좋은 에너지 기기 보급을 위해서는 ‘톱러너’(Top-runner)방식을 도입해 선두 개발 제품의 판로 확대를 중시해야 한다.
정책수단 동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또는 지자체 차원에서 공무원들의 솔선수범이다. 이 경우 별도의 공무원 실천항목을 만들어 적극 실천 홍보할 필요가 있다. 규제와 이행확보를 확실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 대책 계획서’‘건축물환경 배려 계획서’ 등 계획서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사업자와 ‘옥상녹화 협정’‘공장녹화 협정’ 등을 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행확보를 위해선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고, 시민단체와의 협력해 ‘건축물환경라벨링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민간 사업화의 지원도 초기단계에서 사업 도입을 위한 노하우를 지원하고, 특히 현 정부가 강조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
녹색경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홍보 전략도 중요하다. ‘도심 경유차량 진입 금지’와 같은 정책마케팅 차원의 ‘정책의 초점화’도 필요하고 캠페인이나 이벤트 등을 통해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 국내외 네트워크, 민관거버넌스, 소통과 피이드백 등이야말로 정책 성공의 열쇠이다.
김해창 경성대 교수·환경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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