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전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발머는 “구글이 무엇을 파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이 회사가 도대체 무엇으로 수익을 내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지금 구글과 페이스북은 명실상부한 초거대 정보통신(IT) 기업이 됐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물질 상품이 아닌 검색서비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제공하고 여기서 파생하는 무형의 가치를 수익 원천으로 삼는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데이터 채굴(Data Mining) 창구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구글과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얀 물리에 부탕은 <꽃가루받이 경제학>에서 현대 경제 시스템의 가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는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커졌으며 “네트워크에 연결된 인지활동의 상호작용”이 핵심이 됐다. 부탕은 ‘꽃가루받이 경제’와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로 이런 현상을 요약한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주요한 변화로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전환을 든다. 인지자본주의는 “지식, 정보, 감정, 소통 등 인간의 인지능력이 자본 축적의 동력이 되는 자본주의”를 말한다. 생산과 교환이라는 유형의 물질 경제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경제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비물질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유튜브와 카카오톡 등 플랫폼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작동하는 경제 시스템의 가치는 경제학이 포착하는 수치보다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이를 쓰는 익명의 사람들이 플랫폼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점은 쉽게 묻힌다. 여기서 생산과 교환의 경제가 ‘꽃가루받이 경제’로 나아갔다는 저자의 핵심 아이디어가 도출된다.
생태계를 유지하고 번성케 하는 조건은 꿀벌이 생산하는 꿀(생산과 축적)이 아니라 수많은 익명의 꿀벌이 의도치 않게 수행하는 ‘꽃가루받이’(기여)에 있다. 저자는 인지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생태계도 수많은 익명의 사람이 수행하는 활동과 상호작용(꽃가루받이)에 의존한다고 본다. 디지털 플랫폼과 네트워크는 이용자들(꿀벌들)의 자발적 활동에 기반한다. 이들이 이용하거나 활동하지 않으면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없고 수익을 창출할 수도 없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대량생산 시스템은 이제 대세가 아니다. 노동에서도 창의성과 집단지성이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 상품을 구매해 소유하는 방식은 공유와 대여, 스트리밍 방식으로 변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경제 위기는 금융경제(가상경제)가 실물경제보다 우위에 있을 때 발생했다. 가까이 2007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에 그 원인이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 자본주의는 항상 금융자본주의를 욕망했으며, 이는 자본주의가 투기이자 포식자 경제가 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산업자본주의가 낳은 부정적 결과는 근래 기후위기로 나타나는 중이다. 환경은 경제 회계에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경제성장 지표(GDP)는 모순적이게도 환경을 개발하고 파괴할수록 플러스가 된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는 금융자본주의 폭주와 산업자본주의 파괴를 막을 수 있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꽃가루받이 경제’라는 인지자본주의의 긍정적 외부효과가 발현하는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 일환으로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하고 공정하게 과세할 수단으로 모든 금융 거래에 대한 금융거래세를 제안한다. 또 이러한 세원을 바탕으로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고 말한다. 꽃가루받이 경제는 인간의 활동과 사회관계로 부를 창출하기에, 이 부는 마땅히 재분배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이 건강한 경제활동과 인지활동을 하도록 구성원을 보호하는 돌봄경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노동과 성과 관리가 장기 수익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돌봄경제는 구성원의 혁신과 창의성을 장려하고 촉진할 수 있어 인지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선순환시킬 수 있다.
김진구 돌베개 편집부 기획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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