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수지와 주택담보 대출 추이
작년 40조원중 단기가 97%…환율하락 악순환
기업보다 가계대출로 흘러가…긴축효과 반감
기업보다 가계대출로 흘러가…긴축효과 반감
우리 경제가 지난 한햇동안 수출 등을 통해 6조원(경상수지 흑자 61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벌었는데도, 무려 40조원이 넘는 돈(해외차입 434억달러)을 외국에서 꿔온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외국에서 들여온 돈이 기업 투자로는 별로 흘러가지 않고 있어 가계 대출을 통해 시중으로 흘러나가 집값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6년 국제수지 동향’을 보면, 최근 몇년째 줄어들던 자본수지 흑자액이 지난해 돌연 큰 폭으로 늘었다. 자본수지란 상품과 서비스 거래(경상수지) 없이, 직접투자·증권투자·대출 등의 방법으로 외국과 금융 거래를 한 결과를 말한다. 따라서 자본수지가 흑자란 말은 외국에서 들어온 돈이 나간 돈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2003년(139억달러 흑자) 이래 줄곧 감소세를 보이던 자본수지 흑자는 지난해 186억달러로 다시 급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외국에 투자한 돈이 71억달러나 되고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회수한 돈이 133억달러에 이르는데도, 자본수지 흑자가 오히려 늘어난 것은 지난해 434억달러나 되는 돈을 외국에서 꿔왔기 때문이다. 2005년엔 해외차입금이 10억달러에 지나지 않았고, 2003년(-53억달러)과 2004년(-9억달러)엔 우리나라가 외국에 꿔준 돈이 더 많았다. 정삼용 한국은행 국제수지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서 예금은행의 단기차입이 크게 늘어난 게 가장 큰 원인”이라 말했다. 지난해 단기차입금은 422억달러로 전체 해외차입금의 97%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해외차입금이 늘어 자본수지 흑자 규모가 커진 것은 우리 경제의 ‘이상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경제분석팀장은 “단순하게 말해, 외국인들이 우리 경제에 매력을 느껴 투자를 한 게 아니라, 단순 대출로 돈을 굴리는 것”이라며 “마치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아간 꼴”이라 말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자본수지는 직접투자와 증권투자수지가 보잘 것 없었는데도 해외차입이 늘어 큰 폭의 흑자를 냈다.
자본수지 흑자가 크게 늘다보니, 한은이 지난해 콜금리를 세차례나 올렸는데도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수소 수석연구원은 “해외차입금이 돈줄이 말라가던 국내 유동성에 새로운 샘물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현금·요구불예금·저축성예금·정기예적금 등을 합한 광의통화(M2)는 1124조원으로 11개월 사이 130조원이 늘어났다. 이 탓에 긴축 기조가 이어졌던 지난해 통화량 증가율(8.3%)이 오히려 2005년(6.9%)보다 더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해외차입을 통해 늘어난 돈이 가계대출로 나가 집값을 올리고 부동산 거품을 키우고 있는 현상을 우려한다.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2005년 28조6천억원에서 지난해 27조3천억원으로 오히려 1조3천억원 줄었다.
반면 주택담보 대출은 같은 기간 190조원에서 217조원으로 27조원 증가했다. 중소기업 대출도 247조원에서 290조원으로 43조원 증가했다. 특히 2005년 2조8천억 늘어나는데 그쳤던 시중은행 외화대출은 지난해 11월말까지 11개월 사이 14조원이나 늘어났다. 하근철 한은 외환조사팀 차장은 “은행들이 처음에는 해외차입금을 기업들이 내놓는 달러 선물환을 사들이는 데 썼으나, 은행들의 영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츰 대출 재원 마련을 위한 해외차입을 더 늘렸다”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대상으로 이뤄진 외화대출 가운데도 실제로는 부동산 대출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지난해 여행 등 서비스수지 적자가 사상 최고치인 188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전체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61억달러로 줄었다고 밝혔다. 경상수지 흑자는 2004년(282억달러)를 정점으로 3년 내리 감소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를 20억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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