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시중은행 반발에도
표준약관 개정 적극 추진
1조6천억 부담싸고 논란 가열
표준약관 개정 적극 추진
1조6천억 부담싸고 논란 가열
지난해 주택 담보대출을 통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시중은행들이 담보대출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이용자에게 전가하지 말고 은행이 부담하라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고충위)의 권고를 거부했다. 그렇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고충위의 의견대로 표준 약관을 개정할 방침이어서 양쪽의 갈등이 예상된다.
근저당권 설정 비용이란 주택 등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용자가 담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등기부에 올릴 때 들어가는 비용을 말하는데, 현재 은행들은 이를 이용자가 내도록 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주택 담보대출 잔액이 217조8천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최소 1조6천억원 정도의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연합회는 14일 “고충위의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현행 표준 약관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는 오로지 은행과 고객의 협의 사항일 뿐”이라며 “현행 약관에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불공정 약관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외국에서도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은행이 부담하도록 강제하는 사례가 없는데다 실제 대출 과정에서 은행들이 각종 금리 혜택을 통해 설정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있어 굳이 표준 약관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정위는 은행연합회에서 반대하지만 소비자단체 등의 의견을 물어 이른 시일 안에 표준 약관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김만환 공정위 약관제도팀장은 “조만간 약관 심의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표준 약관 개정 작업에 나설 예정”이라며 “공정위는 고충위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표준 약관은 기본적으로 강제 사항이 아니여서 개정되더라도 은행들이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준 약관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은행은 대출 때 표준 약관과 다른 내용의 약관을 사용하고 있음을 소비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김만환 팀장은 “은행들이 표준 약관과 다른 약관을 사용할 경우 고객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압력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표준 약관을 개정한 뒤 가능한 한 표준 약관을 준수하도록 은행들에 적극 권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고충위는 지난해 9월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고객에 일방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은행들이 표준 약관을 고치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을 공정위에 권고한 바 있다. 고충위는 당시 부동산 담보 해지 비용과 채무 불이행에 따른 비용은 이용자가 부담하고, 나머지 대출 관련 비용은 은행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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